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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크리켓 월드컵 첫 승 총성 대신 울려퍼진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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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크리켓 월드컵 첫 승 총성 대신 울려퍼진 희망

입력
2015.02.2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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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승승장구

스코틀랜드팀에 기적의 승리

초기 열악한 환경 이겨내고

아시아 정상팀으로 우뚝 섰지만

치안 탓 국제경기 개최는 쉽잖아

아프간 크리켓 국가대표팀이 스코틀랜드를 물리치고 월드컵 사상 첫승을 올리자,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TV중계를 본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국기를 흔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칸다하르=AFP 연합뉴스
아프간 크리켓 국가대표팀이 스코틀랜드를 물리치고 월드컵 사상 첫승을 올리자,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TV중계를 본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국기를 흔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칸다하르=AFP 연합뉴스

수십년간 계속되는 외침과 내전으로 절망에 빠진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요즘 유일한 위안과 기쁨을 안겨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아프간 국가대표 크리켓팀. 이들이 승승장구하면서 크리켓은 아프간인들에게 스포츠 이상의 존재가 됐다.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철수, 탈레반 공격 위협 고조 등 정치ㆍ사회적 불안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지만, 크리켓이 종교나 민족 갈등을 초월해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프간 국가대표팀 주장 무하매드 나비(30)는 “아프간 전 민족, 심지어 탈레반도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 최초 크리켓 월드컵 승리

26일(현지시간) 뉴질랜드 남부 더니든에서 크리켓 종주국이라고 할만한 스코틀랜드팀에 맞선 아프간 대표팀은 패색이 짙었다. 앞선 공격에서 스코틀랜드는 이미 210점을 얻은 반면 반격에 나선 아프간 팀은 10명 중 7명이 아웃된 상황에서 얻은 점수는 97점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기적이 시작됐다. 8번째로 공격에 나선 사미울라 센와리가 혼자서 96점을 뽑아낸 것. 이후 계속된 공격 성공으로 강적을 물리쳤다. 마지막 선수 샤푸르 자드란이 아프간의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완성한 순간 선수들이 뒤엉켜 감격해 했다. 그 순간 즐거운 일이 별로 없는 아프간 전역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춤을 추고, 총을 하늘에다 쏘며 기쁨을 만끽했다. 로이터는 이날 아프간에서 흥분한 사람들 중 6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축하 군중 속에서 만난 아마드 야신(19)은 “오늘은 내 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라며 “이 승리는 아침에 폭탄 터지는 소리에 깨어나고 계속되는 각종 폭력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라고 말했다.

열악했던 초기 환경

아프간 크리켓은 아프간에서 시작되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 옛 소련과 전쟁 시절 이웃나라인 파키스탄 내 아프간 난민 캠프에서 첫 경기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식 크리켓 공도 없어 테니스 공으로 대신했다.

난민 캠프에서 결성된 대표팀이 아프간 본토에 처음 크리켓을 선보였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경기를 열 만한 장소조차 마땅치 않았다. 대표팀 매니저 바쉬어 스타넥자이는 “카불 중앙 대공원의 축구 경기장에서 첫 크리켓 경기를 했다”며 “크리켓을 하기엔 운동장 표면이 너무 거칠었다”고 말했다. 대표팀 투수 하미드 핫산(27)은 “부모님은 내가 열심히 공부해 의사나 기술자가 되라고 하셨다”며 “어떤 부모도 자식이 골목에서 놀면서 시간을 낭비하기를 원하진 않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눈부신 실력 향상

시작은 미약했다. 2001년 폭격 속에서 파키스탄 2부 리그팀과 경기를 진행했다. 당시 아프간 국가대표팀은 학생, 카펫 세일즈맨, 상점 점원 등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수준이었으며 정부 지원이 없어 장비는 국제크리켓 협회로부터 지원받았고 훈련 경비는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2008년 국제크리켓평의회(ICC) 순위에 처음 이름을 올리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5부 리그에 속한 그들이 준회원국 리그에서 우승을 거두자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탄자니아에서 진행된 4부 리그에서는 홈팀을 완파한 것을 시작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승리를 이어가면서 2011년 월드컵 예선 진출권을 획득하자 아프간 국민들의 자긍심은 하늘을 찔렀다. 대표팀 매니저 스타넥자이는 “당시 동영상을 보면 지금도 눈물이 고인다”고 털어놨다.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 정상급팀이 됐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크리켓 준결승에서 아프간이 강력한 우승후보 파키스탄을 22점차로 꺾고 전쟁의 포화에 시달리는 조국에 기쁨을 선사한 장면은 ‘AFP선정 잊기 어려운 장면 10’에 선정됐다.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결승까지 진출, 스리랑카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국민 성원에 힘입어 경기 시설 및 지원 수준도 향상되고 있다. 아프간 정부도 운영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또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원조로 지어진 카불 국제 크리켓 경기장에는 실내외 훈련장은 물론, 각종 장비가 완비된 체육관과 숙소 시설도 갖췄다. 칸다하르에 건설 중인 새 경기장은 독일과 인도가 수백만달러를 지원했고 앞으로도 파키스탄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더 많은 운동장이 건설될 계획이다.

산적한 숙제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험난하다. 무엇보다 과격 단체 탈레반의 재기 가능성이 가장 큰 위협이다. 아프간 내에서 국제대회를 개최하기엔 여전히 치안이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대표팀은 국가 이미지를 바꾸는데 앞장 서고 있다. 대표팀 주장 나비는 “크리켓도, 국가 이미지도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다”며 “크리켓을 위해, 그리고 아프간을 위해 대표팀은 똘똘 뭉쳐 한 경기 한 경기 치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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