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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세상의 악

입력
2015.02.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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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 김근수 선생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내 죄’보다 ‘세상의 악’을 먼저 알아야 한다. 세상의 악을 제대로 보아야 비로소 내 죄를 알게 된다. 내 죄에 초점을 맞추면 세상의 악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내 죄를 생각하라’는 말이 ‘악의 세력에 신경 쓰지 말라’는 속임수로 쓰일 수 있다.”

허물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들춰보면 줄줄이 쏟아져 나와 스스로 민망하고 부끄러워 다시 들여다보기 싫을 지경이다. 그러니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다고 감연히 말하는 사람조차 그 말이 스스로 뜨끔한 게 현실이다. 내 허물이 태산처럼 쌓였는데 어찌 세상의 악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입이나 댈 처지일까. 그러니 입 다물고 눈 감는다. 그렇게 모두 자신의 고치에 웅크리며 부지런히 반성도 하고 그저 속으로 속죄하며 구원을 비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 ‘너는 깨끗하냐’며 입 다물라 강요하고 그저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에 대해서만, 조직에 대한 충성스러움만 강조하며 요구한다. 그게 전체주의의 시작이다. 밀턴 마이어는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라는 책에서 히틀러와 나치가 저지른 전횡은 나머지 절대대수의 동의와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지적하며 대다수 독일인은 나치즘의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공범자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나서 애국가에 관해 말하면서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서도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유신시대에 영화관에서도 벌떡 일어나 애국가를 들어야 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라 사랑 된다고 믿었던, 그렇게 시켰던 사람들의 사고가 그대로 재생되고 있다.

부부싸움하다 애국가 퍼지면 경례하는 게 코미디지 경건한 애국심일까. 그 장면에 ‘진지한 감동’을 느꼈다는 사람이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끄는 건 서글픈 일이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밑의 수하들은 팔 걷고 나서서 태극기 강제 게양 운동을 벌이려 든다. 상가와 사무실 등으로 쓰이는 민간 건물에 국기 게양대 설치를 의무화하고 주택을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 국기꽂이 설치 여부를 확인하겠단다. 그것을 위해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겠단다. 학생들에게는 국경일마다 태극기를 게양한 뒤 인증샷을 찍어 제출하고 일기와 소감문 등을 발표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그뿐인가. 유치원생에게도 국기 교육을 시키고 각 교실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지도 점검하겠단다.

애국심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삶, 행복한 세상,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가 구현되는 사회가 마련되면 저절로 애국심이 생긴다. 그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나와 내 사회,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수호의지가 생긴다. 시간은 앞으로 흐르는데 시계만 1970년대 암울한 유신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국수가 불어터진 게 남 탓이라는 것도 듣기 민망한 말이지만 국수 끓이는 줄 알았던 물이 인간적 인격적 삶, 행복, 자유와 민주주의를 삶는 물인 걸 확인시켜주는 게 더 한심한 일이다.

큰 허물 탓하고 따지면 “그런 너는 잘났냐? 너는 티끌만큼도 허물 없냐?”고 윽박지르고 관변 친위대 급조하거나 보수 성향의 단체 부추겨 꼴사납게 만드는, 그 배후의 세력이 ‘사회의 악’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허물을 가진 사람을 기어이 총리로 앉힌 사람이나 그를 옹호하는 지역인들의 태도는 사회의 악은 보지 말고 ‘네 죄’나 따지라는 엄포나 마찬가지이다. 하기야 그렇게 총리 된 사람의 ‘네 죄’는 우리의 ‘내 죄’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만들어준 ‘복음’인지도 모르지만.

악이 보편화 되면 죄의식도 없어진다. 내 허물과 죄를 더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악에 대해 맞서고 싸우는 법을 따라야 한다. 학교 교육도 그런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태극기 펄럭이는 것 보면 뭉클해진다. 그러나 세상의 악이 없어져야 진정 애국심이 생긴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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