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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소울푸드와 백년식당

입력
2015.02.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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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 잡지에 ‘소울푸드’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연재했다. 부제를 붙인다면 ‘음식과 나’ 정도가 될까. 당시 연재 앞머리에 썼던 글은 이렇다. ‘하루 세 번 밥을 먹는다. 배가 고프든 그렇지 않든 꾸역꾸역 먹어왔다.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구차하고 아름다운 습관. 어쩌면 밥을 먹는 틈틈이 살아왔다는 생각도 든다. 이 글은 그 사소하고 사무치는 순간들에 대한 작은 기록이 될 것이다.’

작지만 잊히지 않는 삶의 순간들을, 그 순간 내 옆에 있었던 음식들을 매개로 기록하고 싶었다. 거창한 음식들은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스무 살에 미팅으로 만난 남학생과 먹은 짜장면, 돼지고기를 드시지 않던 아버지 때문에 어릴 때부터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멸치김치찌개, 카페인을 섭취하는 데 대한 죄책감을 꿀꺽 삼키며 주문하던 임신 7개월의 다디단 커피 같은 것들이.

그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재를 중단했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당시 연재물을 재미있게 읽었다거나 연재 재개 개획이 없는지를 묻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처음엔 글에 대한 칭찬인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대화는 예외 없이 이런 방식으로 이어졌다.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도 멸치 김치찌개 자주 끓이셨는데!” 삼십 분 전에 처음 만난 이가 갑자기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가 김치찌개에 대해서가 아니라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만큼이나, 음식에 대한 공통의 기억을 나누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어떤 장르든 국내서와 번역서를 가리지 않는 내 독서 취향에서 이례적으로 국내 저자의 글만을 편애하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음식에 관한 에세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출간된 이 분야의 국내 저서 중에 하나 만을 꼽으라면 작가이자 요리사인 박찬일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우선 고르겠다. 짜장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쓴다. ‘건강한 육체 노동자들의 왕성한 식사 현장을 속으로 조용히 읽어 보시라. 곱빼기. 대개 그들은 곱빼기를 시킨다. 속으로 조용히 읽어보시라. 곱빼기, 이 말에 복 있으라. 짜장면을 양껏 젓가락으로 말아 올려, 입가에 소스를 묻히며 후루룩 소리도 요란하게 한 다발의 짜장면을 넘기는 장면을.’ 이쯤 되면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가 얼마 전 새로 낸 책 ‘백년식당’도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가 직접 전국의 노포(老鋪)를 찾아다니며 취재한 기록이 담겨 있다. 노포는 말 그대로 늙은 점포다. 수십 년 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는 유서 깊은 식당들은 대개 작고 허름하고 숨어있다. 유난히 식당 창업이 잦고 문 닫는 식당도 많은 대한민국 현실에서 30년만 넘어도 노포 축에 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연히 개업한 지 100년이 넘은 식당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백년식당’이라는 말은 어떤 희망과 바람을 품은 것이 된다.

저자가 찾은 한국의 노포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보였단다. 첫째, 맛있다는 것. 둘째, 주인이 직접 일한다는 것. 셋째, 직원들이 오래 같이 일한다는 것 등이다. 소박하고 깨끗하고 성실하게 가게를 꾸려온 주인들의 이야기를 따라 읽어갈수록 이 책이 단순한 음식 기행이 아니라 늙어가는 도시와 그 도시를 살아낸 평범한 인간들에 대한 한 보고서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18곳의 오래된 식당들 중에 어떤 가게가 진짜 ‘백년식당’이 될 때까지 남아있을지 궁금해졌다. 동시에, 혹 이 책이 너무 잘 팔려 이 작은 식당들이 속해 있는 동네가 요샛말로 갑자기 전국적으로 ‘힙한 곳’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웃지 못할 우려가 들었다. 그러면 그 동네 가게들의 월세가는 천정부지로 뛸 테고, ‘원조’는 건물주 아들의 커피숍 창업을 위해 쫓겨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진짜 ‘백년식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네 번째 결정적 조건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자기 소유의 건물에 가게를 열고 있다,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해졌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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