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가면 소개팅도 하고 미팅도 해서 달콤한 연애를 할테야.’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꿈꾸는 새내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에겐 결코 달콤한 상상이 아니다. 되레 악몽에 가깝다.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고 싶은데, 정말 쉽지가 않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희망사항 1순위는 이론의 여지 없이 취업이다. 이건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마찬가지다. 게다가 동성애자들은 사회적 통념의 벽을 넘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어쩌면 남들보다 한 발 더 뛰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캠퍼스에서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은 고달픔의 연속이다. 대학생 동성애자 7명(레즈비언 2명, 게이 5명)을 만나 연애와 결혼, 학교생활과 취업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들어봤다. 동성애자 삶에 대한 앎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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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동성애자가 사는 법① 2015 대한민국 동성애학 개론
대학생 동성애자가 사는 법② 사랑이 버거운 '그런 애들'
● 학교생활 : 누구나 비밀은 있잖아, 숨기기도 공유하기도 힘든
게이인 정민수(26ㆍ가명)씨는 주변의 권유로 딱 한번 미팅에 나간 적이 있다. 정씨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갔지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며 “불편했던 당시의 기억 때문에 다시는 그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커밍아웃은 이런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당연히 위험부담도 따른다. 외향적 성격의 윤씨는 성공한 케이스다. 독서모임 회원들과 허물없이 지내온 윤씨는 평소 동성애를 주제로 한 독서토론을 주도하며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자신을 이해할 준비가 됐다고 확신이 든 후 비밀을 털어놨고, 회원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반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사례도 있다. 황선민(25ㆍ가명)씨는 새내기 때 동성 동기에게 용기를 내 고백했다. 하지만 되돌아 온 건 따돌림. 결국 1학년 때 휴학과 입대를 결정하고 아웃사이더의 길로 들어섰다 황씨는 “내가 게이라는 소문이 돈 뒤 학과 내에서 나와 조모임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졌다”며 “커밍아웃의 높은 벽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고충을 안고 있는 동성애자들에게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평소 소극적인 동성애자 대학생들도 성소수자 동아리에선 활기를 되찾는다. 서울 B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회원인 최현욱(22ㆍ가명)씨는 “동성애자가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는 좋은 사람들을 알게 돼 행복하다”며 “열심히 활동하는 선배들을 보고 자극을 받아 연합 봉사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대학생활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 취업 : 들어는 봤어? 성소수자 가산점
“근데 왜 저희한테는 취업 얘기는 안 물어보세요?”
대학생의 최대 고민은 뭐니뭐니해도 취업이다. 동성애자라고 다를 건 없다. 윤씨는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지만, 취업 걱정도 태산”이라고 했다. 동성애자가 취업에서 불이익을 당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얼마 전 첫 직장 면접에서 “여자가 왜 그렇게 사내처럼 하고 다니냐”라는 지적을 받았고, 결국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씨는 “능력이 부족했겠지만, 다른 요소도 작용하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물론 겉모습만 보고 동성애자 여부를 판단하긴 힘들지만 목소리, 말투, 몸가짐 등 몸에 밴 습관이 면접에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때론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한국 IBM과 러쉬(LUSH) 등 일부 기업은 채용 시 성소수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가산점에 대해선 동성애자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최씨는 “성소수자 가산점을 부여하는 기업들이라면 내 능력을 차별없이 인정해줄 것”이라며 기대한 반면, 정씨는 "우리가 가산점을 받을 만큼 핸디캡을 안고 있는 건 아니다”라며 “성소수자들이 장애인이나 보훈대상자와 같이 배려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레즈비언들은 전문직 직종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레즈비언들은 독신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아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 하기 때문이다. 강윤지(24ㆍ가명)씨는 “레즈비언들이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를 많이 봤고 실제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며 “나도 전문직에 종사하고 싶어 국가고시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김진솔 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학과4)
이유민 인턴기자(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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