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가 현재 고교 3학년이 대학에 입학하는 2016학년도부터 학과제를 폐지하고 단과대학별로 신입생을 모집하겠다고 발표했다.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라는 방침에 따르면 내년 신입생은 2학년 1학기까지 세 학기 동안 단과대학별로 전공기초 및 교양 과목을 수강한 뒤 2학년 2학기 때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중앙대는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도입되는 2021학년도 이후에는 인문ㆍ사회, 자연공학, 예술ㆍ체육, 사범, 의예ㆍ약학ㆍ간호 등으로 모집단위를 더 넓히겠다는 것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상당수 대학들이 모집단위를 학부나 계열 등으로 광역화하는 추세이긴 하나 학과제는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과 자체를 폐지하고 학사업무를 단과대학으로 통합하는 중앙대의 시도는 대학교육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파격으로 여겨진다.
학교측의 고민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기업의 현실적 수요를 대학이 충족시키지 못하고, 이로 인한 취업난 등으로 대학교육 무용론이 일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신입생들이 수능 성적 위주로 학과를 선택하다 보니 전공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구 감소로 인해 현재의 구조로는 대학의 생존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반영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앙대의 ‘너무 나간’ 시도는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우선 전공간 서열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고, 필연적으로 대부분의 인문사회학을 비롯, 취업전선에서 점점 배제되는 학문의 퇴출로 이어질 게 뻔하다.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취업난으로 학생의 선택지가 제한적일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돈 안 되는’ 학과는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그렇잖아도 중앙대는 2008년 두산에 인수된 이후 수 차례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으로 홍역을 치러왔다. 2013년에는 비인기학과 4개를 폐지했고 작년에는 대학원의 9개 학과를 없애고 인문ㆍ예체능 계열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기업식 구조조정’이니 ‘두산대’니 하는 비아냥이 나온 이유다. 교수 평가에서도 학문적 업적이나 연구성과는 취업성적이나 학생 선호도 등에 밀려날 것이다.
박용성 이사장은 과거 두산중공업 회장 시절, 대학은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직업교육소’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대학들이 신규노동력 공급 측면에서 외국보다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더라도 대학을 온전히 직업교육소와 동일시 하는 인식은 최고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존재의의를 근본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대학교육 전반에 미칠 엄청난 영향을 생각해서라도 섣불리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재고해야 마땅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