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덕적 행위라도 개인 사생활 해악 크지 않아 국가 개입 안 돼
혼인관계 사실상 회복 불가능 상태서 간통자·상간자 규제 대상 아냐
재판관 9명 가운데 7 대 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간통죄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재판관들의 의견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모두 4가지 의견이 나왔고, 위헌 의견도 3가지로 갈렸다. 62년 간 유지되며 다섯 차례 위헌심판을 받은 만큼, 간통죄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은 재판관들 결정에 고스란히 녹아 들었다. 진보와 보수의 구분 없이 다수의 재판관들이 위헌의견을 낸 것도 특징이다.
5명 재판관, 간통죄 위헌성과 실효성 부족 지적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7명 중 5명은 간통죄의 본질적 위헌성을 지적했다.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진성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사회구조 및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의식이 변화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중시하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간통행위에 대해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이제 더 이상 국민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세계의 간통죄 폐지 추세도 위헌결정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들 재판관들은 “비도덕적 행위라도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지 않거나 구체적 법익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없는 경우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게 현대 형법의 추세이고, 이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간통죄는 폐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형벌을 통하여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5명의 재판관들은 “간통행위의 처벌비율, 사회적 비난 정도에 비추어 형사정책상 예방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게 됐다”고 사회인식의 변화를 인정했다. 또한 간통죄가 “배우자의 이혼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일시 탈선한 가정주부 등을 공갈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현실도 지적했다. 재판관들은 따라서 “부부 간 정조의무 및 여성 배우자의 보호는 재판상 이혼청구, 손해배상청구, 자(子)의 양육, 면접교섭권의 제한ㆍ배제, 재산분할청구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다수의 재판관들은 간통죄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론지었다. 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실질적 위하력(威?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간통죄를 폐지하는 한편, 간통행위로 인한 가족의 해체 사태에서 손해배상, 재산분할청구, 자녀양육, 면접 등에 관한 재판실무관행을 개선하고 배우자와 자녀를 위해 필요한 제도를 새로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명 재판관, 제한적인 측면의 위헌성 지적
김이수 강일원 재판관도 위헌의견을 냈지만 앞서 5명의 재판관과는 궤를 달리 했다. 김이수 재판관은 “간통 처벌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하기 어렵고 형벌적 규제가 아직도 필요하다는 것이 상당수 일반 국민들의 법의식으로 보인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실상 혼인관계의 회복이 불가능한 파탄상태에서 배우자에 대한 성적 성실의무를 더 이상 부담하지 않는 간통자와 미혼인 상간자는 국가가 형벌로 규제할 대상이 아니다”고 위헌성을 지적했다. 다만 미혼인 상간자가 적극적 도발 내지 유혹을 함으로써 간통을 유발한 경우는 처벌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김 재판관은 이처럼 간통의 개벌적인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벌은 국가형벌권의 과잉행사라며, 위헌으로 결론내렸다.
강일원 재판관도 간통의 법적 규제 필요성을 인정한 뒤 “죄질이 현저하게 다른 수많은 경우가 존재함에도 반드시 징역형으로만 응징하도록 한 것은 형벌간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위헌 입장을 밝혔다.
합헌 재판관 2명, “간통죄 처벌 필요”
합헌 의견을 낸 이정미, 안창호 두 재판관은 “간통은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혼인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훼손하고 가족공동체의 유지ㆍ보호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며 존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간통은 여전히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의 보호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재판관은 “현행 민법 제도나 재판실무에 의하면 부부가 이혼할 경우 가정 내 경제적ㆍ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고,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자녀양육에 대한 책임과 파괴된 가정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도 간통죄를 유지할 이유로 제시했다. 또한 간통죄가 폐지될 경우 “혼인의 책임과 가정의 소중함은 뒤로 한 채 수많은 가족공동체가 파괴되고 가정 내 약자와 어린 자녀들의 인권과 복리가 침해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간통죄가 징역형만 규정한 것 역시 선고유예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과중한 형벌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정미 안창호 재판관이 진보, 보수 성향으로 각각 분류된다는 점에서 간통죄 판단에 이념의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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