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친가나 외가에 가면 무턱대고 기쁘던 때가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는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사촌들과 만난다는 생각만으로도 한없이 들떴다. 몇 개월 만에 보는 것인데도 우리는 마치 어젯밤에도 한데 어울렸던 것처럼 사이 좋게 놀았다. 격의도 없고 일말의 불편함이나 껄끄러움도 없었다. 나이가 서너 살 차이 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형이나 누나라고 한 번 부르고 나면 심리적 거리가 바짝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친숙했기에 근황을 묻는 절차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눈빛을 교환한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가 뛰어 놀면 그만이었다. 이렇듯 금세 친해졌다가 아쉽게 헤어지는 일이 한 해에 정확히 두 번 반복되었다.
시간이 흘러 나를 비롯하여 사촌들은 모두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사촌들을 만나도 예전처럼 친근함을 느끼지 못한다. 뛰노는 것만으로 마냥 즐겁고 편안했던 시절은 아득해졌다. 겨우 입을 떼서 시작한 대화가 어느 순간, 툭 끊어지는 일 또한 많아졌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우리는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추석에는 잠자리를 잡으러 다니고 설이면 얼음을 지치며 놀았던 일을 떠올리기는 할까. 그 사이, 대학교 입학부터 시작해 취업과 승진, 결혼,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질문들만 산더미처럼 늘어났다. 질문은 가득한데 답이 없으니 섣불리 누가 먼저 입을 떼기 두려운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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