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임을 앞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5일 사실상 마지막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했다. 류 장관은 민간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제재하라는 야당 의원들의 주문에 “검토해보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곧 떠나는 장관이라고는 하지만 부처 안팎에선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통일부를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말이 나왔다.
류 장관 스스로도 2년의 재임 기간이 ‘답답한 세월’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류 장관은 홍용표 후임 장관 후보자 내정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기간 경색돼 있는 남북관계를 제대로 풀어보자는 뜻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렇지 못해 아쉽다”는 소회를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소신과 처한 현실이 따로 놀았던 ‘비운의 장관’으로 기억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배경으로 통일 정책의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도리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도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군 출신의 안보론자들이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서 류 장관 혼자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북정책기조에서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을 원칙으로 삼는 강경파들 사이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류 장관은 설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류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만나 대북전단 살포 제재와 관련해 “만약 내가 좀 완화한다고 하면 북한에 휘둘렸다며 반대쪽에서 엄청 난리가 날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에 따라 막을 수 없다는 정부 방침이 세워진 이상 제가 거기에 뭐라고 더 말을 할 수 있겠냐”며 답답해 했다. 그는 또 “(현 정부) 외교 안보라인에서 민간인은 나 혼자”라며 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에둘러 토로했다.
류 장관은 특히 통일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역대 정부를 보더라도 통일부 위상이 높았던 때가 없었다”면서 “그나마 통일부에 힘을 실어줬던 참여정부에서도 2차 남북정상회담은 국정원이 주도했고 통일부는 주로 대외적으로 나서는 것 위주로 맡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며 “장관직을 떠나면 (통일부의 구조적인 한계 등) 이런 부분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교수 출신인 류 장관은 퇴임 후 학계로 돌아가 후학 양성에 힘쓸 것으로 알려졌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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