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선 때부터 ‘낙하산’ 논란에 휘말렸던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 끝내 자진 사퇴했다. 취임 53일 만이다. 한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조차도 모른 가운데 불쑥 이루어졌다. 한 감독은 “여러 논란 속에 도전적인 의욕보다 좌절감이 크게 앞서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기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체부의 무리한 인사가 다시 한 번 예술계에 평지풍파를, 한 감독 본인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셈이 됐다.
한 감독 임명은 애초부터 문화예술계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예술단체장의 특성상 사계의 평판과 신뢰를 확인해야 마땅한데도 그런 과정조차 없이 일방통행 식으로 강행됐다. 그렇다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취나 경력을 갖춘 인물도 아니었다. 문체부는 당초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적임자를 복수 추천 받았고 평판조회를 한 뒤 인사검증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초 추천자나 추천 경위 등은 주무 부서에서도 “모른다”거나, “우리는 힘이 없다”고 얼버무릴 정도였다. 한국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가 한 감독 임명을 ‘청와대 발(發) 낙하산 인사’라며 이례적인 반대시위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어찌 보면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인사 한 건은 대단치 않은 문제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은 현 정부 들어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무리한 문체부 관련 인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직전 “부실한 인사가 전문 분야와 상관없는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것은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권 초 예술의전당 사장부터 시작해 연예인 자니 윤씨를 관광공사 감사에 임명하기까지 대통령의 약속과 다른 인사가 이어졌다.
문체부는 연일 뒤숭숭한 분위기다. 지난해 유진룡 전 장관이 후임장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질되고, 뒤 이어 승마협회 감사와 관련해 대통령이 직접 관련 국장들의 교체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지난 1월 김희범 1차관이 취임 6개월 만에 돌연 사표를 낸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석연찮은 인사가 반복되자 최근엔 인사혁신처가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를 두고도 미술계가 들썩이는 등 문화예술행정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상태다. 이런 식으로 ‘문화융성’이 가능할 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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