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공연 들어간 연극 '유도소년'
박경찬 작가ㆍ이재준 연출가
유도선수ㆍ연애 경험담 공동 집필
학원ㆍ복고 액션ㆍ로맨스 연극으로
연일 매진...판권 영화사에 팔려
여기, 아픈 걸 견디지 못해 매번 경기에서 지는 유도 선수가 있다. 전북체고 2학년 박경찬. 능수능란하게 상대를 엎어 치다가도 꺾기, 조르기 기술이 들어오면 “포기”를 외치며 허무하게 경기를 끝내고 만다. 중학생 때까지 지방대회를 휩쓸며 감독들의 숫한 러브콜을 받지만 고교 진학 후 또래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체격과 얄팍한 인내력, 연이은 패배로 인한 마음고생까지 겹쳐 하락의 길로 접어든다.
작가의 고교시절 패배담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 ‘유도소년’은 지난해 4월 첫 공연 후 대박을 터뜨렸다. 당시 세월호 침몰 참사 여파에도 스타 배우 하나 없는 창작극이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2주 연장 공연까지 돌입했다. 지난 7일 시작한 재공연도 객석은 빈자리 없이 빽빽하다. 1997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MBC 무한도전 ‘토토가’ 등 90년대 복고열풍이 영향을 미쳤으나, 작가의 살아있는 경험이 없었다면 어려운 호응이었다.
24일 대학로에서 만난 박경찬(35) 작가는 “아픈 걸 싫어했다. 초등 5학년 때 어린애가 배우지도 않은 낙법을 하는 걸 보고 선생님들이 추천해 유도를 시작하게 됐는데, 사실은 맞지 않으려고 몸을 던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학생이 되면 꺾기, 비틀기 같은 기술을 쓸 수 있는데 이런 기술이 들어오면 아픈 걸 필사적으로 버텨야 하기 때문에 제가 경기에서 이기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죠.”
2년 전 술자리에서 털어놓은 이 이야기는 연출가 이재준(37)씨와의 공동집필을 거쳐 ‘학원ㆍ복고 액션ㆍ로맨스ㆍ스포츠 연극’으로 탄생했다. 이씨는 “두 사람 다 연출가로 일했지만 극작은 처음이었다”며 “극중 경찬처럼 우리도 우리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를 고민하면서 쓴 작품”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경험담이 극의 뼈대라면, 이씨의 경험담은 깨알 같은 재미를 준 대사에 녹아 들었다. 예를 들면 극중 화영이 경찬의 고백을 거절하며 던진 “우린 감정의 색깔이 다른 것 같아”같은 손발 오그라드는 말들. 이씨는 “대학 1학년 때 첫사랑에게 고백했는데, 이 친구가 제 삐삐에 남긴 말이었다”며 “당시 제가 친구들한테 ‘지는 빨간색이고, 나는 파란색이가’라며 푸념한 것도 극중 경찬의 대사로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극단 단원 중 한국어를 어색하게 쓰는 해외동포 출신 배우에서 착안해 경찬의 엉뚱 후배 요셉 캐릭터도 만들었다.
이씨가 연출하고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찰진 전라도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배우들의 연기, 잘 짜인 군무와도 같은 액션, 1997년 감성이 물씬 돋는 추억의 음악의 삼박자로 격렬한 객석 호응을 이끌어냈다.
초연 때부터 충무로의 러브콜을 받아온 이 작품은 최근 영화사 JK필름에 판권이 팔렸다. 공동집필자들이 각색도 맡는다. 이씨는 “계약서에서 판권 금액을 누출하지 않기로 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 드릴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창작자의 수고를 상당히 인정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5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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