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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그 파란 하늘은 어디로 갔나

입력
2015.02.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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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에 살면서 맨발로 논두렁을 뛰어다녔고, 이름없는 무덤 곁에서도 즐겁게 놀았다. 저수지 근처에서 가만히 물을 바라 보거나, 숲에 들어가 바람이 나무를 쓰다듬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은 나무 꼭대기부터 불었다. 나무 꼭지가 먼저 흔들리면 곧이어 ‘위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흔들림에 몸을 맡기면 몸은 바람과 함께 저절로 흔들거렸고, 그러면 나는 마치 나무가 된 것 같았다. 가만히 서서 바람이 나를 만지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은 바람은 상냥하고 보드라웠다. 어느 숲이든 나무 꼭대기에는 하늘이 걸려 있었다. 하늘은 파랬고, 조용했다. 나는 그런 하늘이 좋았다.

비 오는 날은 마루에 누워 비가 처마 끝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눈으로 붙잡으려 애썼다. 비가 세차게 오면 창문에 부딪히는 물방울 소리가 명랑했다. 톡톡 거리는 빗방울 소리에 마음이 몽글몽글 풀어지는 것 같았다. 온갖 상상을 하고, 많은 세상을 지어내고 또 허물었다. 그러다 가끔 비를 맞으러 뛰어나가기도 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면 차가운 빗방울들이 얼굴에 떨어졌다. 톡톡톡. 비를 맞으면서 느끼는 시원함은 자유로움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빗방울 사이로 보이는 회색 하늘은 마음을 다독여 주었고, 때로 지나치게 뜨거워진 심장을 식혀주는 것 같았다.

그런 회색 하늘도 좋았다. 바라보고 있으면 차분하고 어른스러워지는 깊은 회색 빛 하늘. 나의 많은 음악들이 그 모호하지만 깊었던 하늘을 노래하고 있다. 끝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땐 아무도 비를 맞으면 피부가 상한다거나 몸에 안 좋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옷이 젖을 뿐 다른 나쁜 점은 없었다. 오히려 한바탕 비를 맞으면 몸과 마음에 쌓였던 찌꺼기나 먼지 같은 것들이 쓸려나가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엔 하늘이 맑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역시 맑았다.

봄이 다가 오고 있다. 반가워야 할 지금. 무시무시한 뉴스를 아침마다 확인한다. 미세먼지, 황사.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외출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 문을 열고 나서면 저 먼 곳이 뿌옇게 흐리다. 눈을 아무리 비벼봐도 마찬가지다. 차는 온통 누런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고, 사람들은 마스크나 옷깃 안에 코를 박고 간신히 숨을 쉰다. 나는 어느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크게 숨을 들이 마시면 폐가 상할까 잔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그 황토색 공간이 참기 힘들다. 잡아 낼 수도 없이 작은 더러운 것이 눈앞에 가득 펼쳐져 있는 그 암담함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코가 맵고, 머리가 지근거리고, 가슴이 답답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중국에서 오는 바람이라지만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주변은 얼마나 돌보았는지 생각한다. 너무 많은 쓰레기와 오염물질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것들’은 결국 나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얼마나 많은 걸 가졌는지 생각한다. 옷장을 보아도 책상을 보아도 신발장이나 냉장고에도 곧 쓰레기가 될 것들이 쌓여있다. 대체 얼마나 더 가져야 가지는 것을 그만둘 것인가. 이 작은 몸이 살아가는데 뭐가 이리 많이 필요한가. 돌아볼수록 괴롭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과 공동작업으로 올린 공연이 있었다. 연습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날들을 연습실에서 함께 보냈다. 연습실 한 켠에는 음료수나 과자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종이컵 다발이 있었다. 열명 정도가 쓰는 연습실에서 하루에 종이컵을 50개나 쓰기도 했다. 쓰레기통에 가득한 하얀 종이컵을 보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날부터 텀블러를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며칠 후 모든 사람들이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누군가 어쩌다 종이컵을 쓰게 되면 그 사람은 민망해 했고, 그게 우리의 문화가 되었다.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기뻤다. 지금도 종이컵을 쓰게 되면 무안해진다. 그때 맺어진 어떤 약속 같은 것을 어기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내가 본 파란 하늘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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