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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세대간 불화 두려워 마라

입력
2015.02.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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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런던 캐스갤러리에서 한국 현대 건축 전시 ‘Out of the Ordinary’가 개최되었다. 런던에서 처음 개최되는 한국 건축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갤러리를 찾았다. 런던 현지의 반응도 사뭇 뜨거웠다. ‘아키텍추럴 리뷰’ ‘도무스’ ‘영국 왕립건축가협회 저널’ 같은 전통적인 매체에서부터, 종이잡지도 독자층을 새롭게 늘릴 수 있음을 과시하며 전세계에 독자를 확보한 ‘모노클’이나 ‘디진’ 같은 인터넷 기반 디자인 전문저널까지 취재에 열을 올렸다.

세계의 건축 수도라 불러도 손색없는 런던에서 한국의 건축에 관심을 기울인 까닭은 내로라하는 한국의 대표 건축가들의 빼어난 작업을 선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2008년에 첫 수상자를 배출한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들 가운데 아홉 팀의 작업과 이들이 처한 한국 사회의 문맥을 드러내주는 사진과 인포그래픽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원숙한 건축가들의 탁월한 성취보다는 아주 적은 예산으로도 어떻게든 무언가를 만들어보려는 젊은 건축가들의 고군분투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순대국밥집, 저소득층 주택과 작은 목조주택, 주차장 건물 등 예전에는 건축가의 일이 아니었던 작업들이 주조였다. 또 버려져 있던 한강 토끼굴 재정비 작업, 섬마을의 폐교를 지역 관광센터로 바꾸는 일, 학교의 빈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일 같은 작은 공공 프로젝트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전시는 한국보다 일찍 저성장 사회를 맞은 영국이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이 취한 전략에 호응하고 공감을 표하는 자리였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내 건설경기 위축의 여파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두바이와 함께 전세계 대형 설계사무소의 마르지 않는 돈줄이었다. 동대문 DDP에서 해운대 마린시티, 용산 개발계획 등. 그런 대규모 개발이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한국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가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젊은 건축가들의 소소한 작업이 긍정적으로만 평가 받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인 시각은 대체로 작업의 완성도에 집중된다. 탁월한 성과를 거둔 선배 건축가들의 작업에 견주면 보잘것없고 젊은이다운 패기와 새로움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비판은 자연스레 세대간 입장 차이로 나뉜다. 세대론의 부상은 당연히 건축계만의 현상이 아니다. 수년 전 청춘을 둘러싼 논쟁도 있었고, 최근 미술계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 예술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요구가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뜨겁게 확산되고 있다.

각 분야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세대론이 부상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한국사회는 거의 처음으로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가졌다. 일례로 얼마 전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이 주최한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토론회에 따르면 20~34세 청년층이 바라는 미래상은 ‘지속적인 경제성장’(23%)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들이 바라는 것은 ‘붕괴, 새로운 시작’(42%)였다.

많은 기성세대들은 예전에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생애 주기는 경제성장과 완전히 일치했다. 그들에게 미래는 언제나 기회였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지금 체제가 붕괴하지 않고서는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다. 물론 이 비관론이 작업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은 아니다. 건축은 안 좋은 상황을 개선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기에 언제나 소박한 낙관론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젊은세대가 기성세대와는 다른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 역시 장밋빛 미래를 염두에 둔 덕담일 뿐이다. 간단한 봉합은 이제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처음으로 한 세대의 이익이 다른 세대의 손해가 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이 불가능한 세대 사이의 불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분명한 한 가지 방법은 불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나아가 이 불화를 더 정교히 다듬는 것이다. 예술사가 증명하듯 세대전쟁은 새로운 가치의 보금자리이고 많은 정치철학자들의 지적대로 불화야말로 정치를 시작하기 위한 조건이니 말이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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