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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종로3가, 그 스산함에 대해

입력
2015.02.2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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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살 단성사 새 주인 못찾아 방치

활력 잃은 노인들 공간으로 전락

역사가 묻어나는 명소로 가꿔가야

종로 3가에 위치한 단성사는 1907년 판소리 공연장으로 문을 연 후, 1918년 ‘의리적 구토’를 상연하면서 한국 최초의 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 그 후로 나운규의 ‘아리랑’을 상연했고, 최초로 100만 관객을 넘긴 임권택의 ‘서편제’도 이 영화관에서 개봉했다. 이 뿌리 깊은 극장은 몇 년 전 문을 닫았고, 경매에 내놓았으나 3차 경매까지 유찰되어 새 주인조차 못 찾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예술장르였던 영화는 첨단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급속하게 변해왔다. 활동사진 수준의 무성영화에서 시작하여 토키영화를 거쳐, 총천연색 영화, 70mm 대형영화로 아날로그 시대의 정점을 찍었다. 원본과 복제본의 구별이 없어진 디지털 환경으로 변하면서 하나의 영화를 수많은 스크린에 동시에 올리는 멀티플렉스로 영화관의 개념을 바꾸어 버렸다. 109살의 나이를 먹은 단성사도 영화의 역사와 함께 시설을 바꾸고, 규모를 확장하면서 왕성한 생명을 유지했다. 급기야 2001년에는 기존 건물을 허물고 7개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 극장을 새로 지었다. 그러나 부도를 맞으며 보석상가로 리모델링했지만 그나마 문을 닫고 출입금지 건물이 되었다.

1958년엔 단성사 바로 맞은편에 반도극장이 문을 열었다. 피카디리 극장으로 이름을 바꾼 후, 인근 서울극장과 함께 종로3가 일대를 한국 영화관의 메카로 만들었다. 피카디리도 건물을 새로 지어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개조했고, 그 운영을 롯데시네마로 넘긴 상태여서 원래의 모습과는 크게 달라졌다. 새롭게 등장한 대형 멀티플렉스 상영관은 기존 개봉관들에게 재해와 같은 타격이었다.

이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은 비단 영화관뿐 아니라, 전철역을 끼고 대규모 식당가와 쇼핑가까지 복합적으로 운영하여 변화된 소비층들을 잡는데 성공했다. 또한 3, 4개의 대기업 유통망으로 배급 시장을 재편해 버렸다. 이처럼 쓰나미같은 상황에서 단성사나 피카디리가 보여준 재활의 처절한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단성사는 좌절했고, 피카디리는 활력을 잃었다.

종로3가 일대는 한국 최대의 귀금속 상가 밀집지역이다. 193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귀금속상들은 3,500여 개소까지 확대되어 전국 거래량의 80%를 점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귀금속 가공과 판매업은 가장 고급스러운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상점의 분위기는 결코 고급스럽지 않다. 한 건물 안에 유치한 수십 개의 업장들은 평범한 조명과 황량한 실내에 상품들은 진열하여, 귀금속 자체의 가치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또 종로3가는 수천 명의 남녀 어르신들이 모이는 이른바 ‘노인 천국’이다. 자발적인 한문 교육이나 성경 공부와 건설적인 토론 등 나름의 실버문화가 형성된 곳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행위는 감추어지고, 노상 음주와 방뇨, 싸움과 폭행, 노인 성매매까지 온갖 부정적인 현상들만 보도되고 있다. 이 싸늘한 사회적 시선과 함께 일대의 노인 공간은 정비하고 해체해야 할 문제 지구로 전락했다.

일생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 어르신들은 마땅히 합당한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종로3가 노인들의 공간은 단속과 계도의 대상일 뿐이다. 반짝이는 귀금속들은 그야말로 고귀한 최상의 환경에 놓여야 한다. 그러나 80년 역사의 귀금속 상가는 허름한 싸구려 도매시장과 같은 풍경이다. 한국 최초와 두 번째인 영화관은 역사의 증인으로 보호받기는커녕 빈사 상태에 빠져있다. 1,000만 관객이 넘는 영화가 매년 탄생하는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다른 면이다.

나이를 먹어 역사가 된다는 것은 오랜 경륜을 통해 사회의 버팀목이 되고, 도시의 명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로3가의 시설과 공간들은 을씨년스럽게 스러져가고 있다. 이 오래된 극장가와 귀금속 상가와 노인들의 공간을 품격 높고 우아하게 재생시킬 길은 없는가. 이곳에 모이는 노인들을 존경하고, 보석은 더욱 빛나 값어치를 높이며, 세계의 젊은이들이 즐기는 100년 영화관을 부활시킬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지는 사회를 만들고, 오래된 장소가 소중해지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가꾸자.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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