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중간층은 20, 30%대 늘고 상위 10%는 19.8% 증가 그쳐
"소득 수준 이원화해 단순 감면하는 정부의 통계 방식부터 바로잡아야"
정부는 그간 해마다 이뤄지는 세법 개정을 통한 세 부담 귀착 효과를 분석해 보면 부자들의 부담은 늘고 서민은 줄어들고 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서민들 개개인이 실제 느끼는 세 부담은 갈수록 혹독해지고 있다. 최근 담뱃세 인상, 연말정산 파동 등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우회 증세, 편법 증세까지 겹치면서 서민들의 세금 체감지수는 정부 주장과 정반대라는 게 서민들의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서민들의 괜한 아우성이 아니었다.
23일 한국일보가 재정학회에 의뢰해 2009년과 2013년 소득계층별 세 부담 귀착 변화를 분석한 결과, 소득세와 소비세 사회보험료 등을 더한 총 조세 부담 변화율은 소득 중간층 이하가 전반적으로 상위계층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1분위(하위 10%)는 23%, 4, 5, 6분위(중간)는 각 31.3%, 25.4%, 22.8% 세 부담이 늘어난 반면, 10분위(상위 10%)는 19.8% 증가하는데 그쳤다. 상위 20%(9, 10분위) 모두 평균(22.8%)보다 낮았다. 세금 절대 액수는 상위계층이 더 많이 늘어났더라도 실제 피부로 느끼는 세금 부담지수는 서민층이 훨씬 높다는 얘기다.
소득 증가분을 감안한 실질적인 세 부담(소득세+사회보험료+소비세) 증가율 역시 중산층 이하에서 훨씬 높게 나타났다. 상위 20%인 9분위와 10분위는 각 1.5%, 3.4%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4, 5분위는 각 7.8%, 7.4% 증가했다. 1분위부터 7분위까지 평균(4.9%)을 웃돈 반면 소득 상위계층(8~10분위)는 오히려 평균보다 낮았다. 소득증가율이 5.3%에 그친 2분위의 경우 소득 증가분을 감안한 실질적인 세 부담률이 무려 16.9%나 뛰었다.
재정학회는 “설문을 바탕으로 한 표본이라 다소 한계가 있지만 중산층 이하의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확연히 높아 우리나라 조세 체계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약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세금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번 만큼 더 낸다’는 조세원칙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세금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인이 내는 세금이 불공평하다고 여길 때 조세 저항은 거세진다.
실제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3)씨는 월급 700만~800만원 중 130만원 정도가 세금으로 빠져나간다.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를 더하면 200만원 가까이 된다. 김씨는 “연봉은 그대로인데 세금만 늘어나는 것 같다”라면서도 “내 세금이 공평하게 책정되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충분히 쓰인다든지, 사회가 좀 좋아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면 아깝지 않고 더 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재정학회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소득 수준에 따라 누진도가 높아져야 하는 소득세 부담률은 6분위(33.0%)를 정점으로 소득이 높아질수록 되레 줄어드는 흐름(7분위 19.6% 8분위 15.1% 9분위 18.0% 10분위 14.3%)을 보였다. 사회보험료 역시 중산층이 훨씬 많이 부담하고, 7분위 이상 상위계층은 평균(15.0%)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이하에서 실제 느끼는 세금 부담이 늘었다는 아우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소득에서 세 부담을 뺀 가처분소득의 격차는 최근 5년간 더 벌어졌다. 10분위의 가처분소득은 1분위보다 2009년엔 9.3배 많았지만 2013년에는 9.9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9분위(상위 20%)의 가처분소득 역시 2분위(하위 20%)의 3.1배에서 3.3배로 높아졌다. 각종 조세 부담과 복지 혜택을 더해 재분배가 완료된 상태를 이르는 최종소득은 소득 하위 10%와 상위 10%간 격차가 2009년 7.1배에서 2013년 7.9배로 벌어졌다.
더구나 최근 세금 증가율은 중간층이 상위계층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가계동향 통계를 바탕으로 직접세 부담을 전년도와 비교한 결과, 중간층(40~60%)은 월평균 세금 부담이 18.8% 늘어난 반면, 상위 20%는 3.0% 증가에 그쳤다. 무려 6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올해 인상된 담뱃세는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세 부담을 지는 조세의 역진적 성격이 강해 앞으로 서민들의 조세 부담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면 정부가 밝힌 2009~2013년 세법 개정에 따른 소득계층별 세 부담 귀착 효과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통계상으로 2013년까지 5년간 소득계층별 세 부담을 분석해 보니 중산서민층이 9조4,000억원 줄고, 고소득층은 32조5,000억원 늘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득 수준을 이분화해 전체 감면 금액만 따지는 정부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개별 세 부담 귀착 효과를 파악할 수 없다”라며 “보다 정밀한 통계 작성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소득 격차 확대와 계층간 소비 성향, 가계 부담 증가, 상대적 박탈감 등도 서민들이 실제 세 부담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느끼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중산층 이하 소득은 상대적으로 적게 오른 반면 세금은 전반적으로 늘어난 것 같다”며 “고소득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저소득층의 소비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증세의 과정에서도 소득재분배 문제를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성명재 홍익대 교수는 “세 부담이 모든 계층에 골고루 돌아가도록 소득세 증가 속도를 임금상승률과 연동하면서 세수 규모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의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소득세수 비중은 201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대비 3.8%로 OECD 평균(8.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민들의 조세부담률 역시 지난해 1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5%)보다 한참 낮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복지선진국에 비해 낮은 법인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높여야 하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현재 38%)을 40%로 올리면서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기준소득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기백 교수는 “자본이득세 강화와 신규 세원 발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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