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릴 하라니. 공허하다. 떠나는 대원군이 어련했겠나. 외려 의심 말라 단속했을 게다. 직언 따위 무슨 소용인가. 뜻이 무결한 분한테 필요한 건 위무다. 보위를 보위할 충성이다.
“역시 ‘영원한 2인자’에 진정한 고향 어른답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포스트 JP’ 이완구 새 총리에게 해준 조언 말이다. “아무래도 여성(대통령)이라 생각하는 게 남자들보다는 섬세하다. 절대로 거기에 저촉되는 말을 먼저 하지 말고 선행(先行)하지 마라”라고 했던 JP는 그래도 못 미더웠는지 어제도 “대통령한테 직언하겠다, 비판하겠다 소리 일절 입에 담지 말라고 했다”고 다시 강조했다. (…) 지금 이 총리에게 직언을 기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비서실장의 본업은 직언이어야 한다. (…) 우리나라만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유난해서가 아니다. (…) 심지어 제럴드 포드 대통령 때 비서실장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없거나 용기가 없다면 남아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럼즈펠드 룰’로 꼽았다. “보기 드물게 사심 없는 분”이라는 박 대통령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를 망친 장본인으로 불명예 퇴진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13년 8월 6일 그의 첫 공식 브리핑은 “윗분의 뜻을 받들어”로 시작되는 청와대 5자회담 제안이었다. 명(命)도 아니고, 말씀도 아니고, ‘뜻’이라는 건 뜯어볼수록 묘한 단어다. (…)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로 시작되는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3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처럼 권위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주는 말도 드물다. 돌이켜보면, 5자회담 제안처럼 그가 윗분의 뜻을 받든 일이 제대로 된 것도 거의 없다. (…) ‘문고리 권력 3인방’ 비서관들을 비롯한 청와대 관리부터 국가기강 문란이라던 문건 유출에다, 인사위원장으로서 책임져야 마땅한 숱한 인사 참사, 심지어 정책조정 미비까지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그래서 궁금하고 기이하다는 거다. 대체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사심 없다’는 것 하나만 갖고 한사코 붙잡고 놓지 못한 것인지(남의 돈 받고 일하면서 사심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아니면 대통령과 국가 보호 차원에서 국민이 모르는 엄청난 비밀 공작이라도 해놓았다는 것인지. (…) 대통령 ‘1인 리더십’으로 뛰기 지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배적 유형’의 김 실장이 들어오면서 청와대비서실은 박정희 유신시대와 똑같은 ‘권한 집중형’ 스타일로 굳어졌다는 것이 행정연구원의 평가다. 어떤 비판을 받더라도 박 대통령이 결코 들어서는 안 될 ‘유신 독재’ 소리를 김 실장으로 인해 듣게 됐다는 건, 그 아버지의 딸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다행히도 박 대통령에게는 3년 임기가 남아 있다. (…) 대통령 이미지용이라도 좋다. 직언할 수 있는 실장을 들이기 바란다.”
-‘윗분의 뜻’만 받드는 비서실장은 안 된다(동아일보 기명 칼럼ㆍ김순덕 논설실장) ☞ 전문 보기
““우병우의, 우병우에 의한, 우병우를 위한 인사지 뭐~.” 6일 발표된 검찰 인사를 두고 새나오는 검사들의 볼멘소리다. 청와대 민정수석에 ‘젊디젊은’ 우병우(48·사법연수원 19기)가 앉다 보니 그 여파가 검찰 인사 전체를 뒤흔들었다는 얘기다. 민정수석은 검찰 간부들에게 은밀하게 협조를 부탁해야 할 일이 많은 자리다. (…) 우 민정수석이 편하게 일을 하려면 검찰도 젊어져야 하는 것이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지만 그만큼 우병우 민정수석이 중요하다는 증거다. 우선 선배인 16기와 17기의 검사장 7명이 옷을 벗었다. (…) 채동욱 총장 사태로 큰 폭의 물갈이가 단행된 게 1년 남짓이고 올 연말이면 김진태 총장 임기가 다해 다시 대폭 인사가 불가피하다. 민정수석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대폭 개편이다. (…) 이를 두고 한 검사는 “생이빨 7개를 억지로 뺀 셈”이라고 표현했다. (…) 대신 19기와 20기가 전진배치됐다. 특히 우 수석이 맘 편히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 검찰총장 다음 자리라 할 만한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 차장에 모두 고향 선배인 대구ㆍ경북(티케이) 출신이 기용된 것도 우 수석으로서는 맘 편히 일할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 청와대 민정특보에 이명재 전 검찰총장을 앉힌 것도 우 수석에 대한 깊고도 먼 배려로 보인다. 이 특보는 우 수석의 고향(경북 영주) 직계 선배인데다 김진태 총장이 평소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 인물이다. 총장과 거래해야 하는 우 수석에게 이 특보는 찬란한 후광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는 모두 김기춘 비서실장이 고안하고 장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토록 자상하고 세심하게 정지작업을 하는 걸 보니 김 실장이 물러나기는 물러나는 모양이다. 어린 세자에게 보위를 물려주기 전 미리 정적을 제거하고 원로대신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남기는 왕의 심정이 느껴진다. 별 인연이 없던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만난 짧은 기간에 두터운 사이가 됐다고 한다. 일을 밀어붙이는 저돌성에 사태를 완전 장악하는 꼼꼼함까지 성격도 비슷해 우 수석을 ‘리틀 김기춘’이라 부르는 사람마저 있다. 덩달아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도 깊어졌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검찰은 완전히 뼛속까지 멍이 들고 말았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리틀 김기춘?’(2월 12일자 한겨레 ‘편집국에서’ㆍ김의겸 디지털부문 기자) ☞ 전문 보기
냉전은 끝났다. 자본이 이겼다. 이념 진영 사라진 각자도생 시대다. 도태가 도처에 널렸다. 더 이상 가족은 고향이 아니다. 굴레일 뿐이다. 성장은 신기루였다. 향수가 세대를 쪼갰다.
“부담스러운 명절은 빨리도 돌아온다. 긴 연휴였지만 주변에는 일가친척을 만나지 않았다는 사람이 꽤 많았다. (…) 오랜만에 만난 친지나 고향 이웃이 왜 그렇게 불편할까? 얼마 전 열린 한국냉전학회 창립 학술대회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인류학자 권헌익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가 나라 안팎의 거대한 정치적 흐름과 만난다고 보았다. 한반도 냉전 문화는 가족, 이웃, 마을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의 농촌 근대화 사업은 자유 진영의 안보 구축 그 이상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지역 공동체 내부에서 반독재 민주화세력, 납북 귀환자 가족, 하물며 ‘정신병자’의 근황까지 감시ㆍ보고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눈에 모든 죄수가 보이는 벤담의 원형 감옥 같은 감시망 속에서 국가 통치 규율에서 벗어나려는 이들 누구나 ‘비정상인’, 곧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될 수 있었던 셈이다. (…) 분단 체제와 가부장적 가족 구조, 감시하는 지역 사회는 서로를 지탱했다. (…) 딱히 할 말 없어 내뱉는 “결혼 안 하냐” “아이 안 낳냐” 등의 말은 ‘비정상인’을 낙인찍었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오래 내면화한 감시 체계, 남부럽지 않게 ‘잘살아 보세’를 외치던 정상화 욕구는 이제 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친족과 이웃에 대한 광범위한 배제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명절 연휴에도 어김없이 경계를 서는 군 장병들의 모습과 북한의 대규모 군사훈련 소식이 텔레비전 뉴스를 장식했다. 어떤 부모들은 그 ‘팩트’를 외면하는 후손을 이해할 수 없고, 그와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자식들은 안보 상업주의에 젖은 채널을 고정해놓고 여생을 보내는 부모가 못마땅하다. (…) 가족들은 대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명절은 가족간의 사랑보다 각자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족끼리 왜 이럴까(한겨레 ‘한겨레 프리즘’ㆍ이유진 문화부 기자) ☞ 전문 보기
“지금의 명절은 가급적 더디게 가고 날래 다녀오는 게 일상화됐다. 고향을 떠난 오랜 ‘아웃도어 살이’에 밀린 숙제 하듯이 명절 고향길에 나선다. 짧게 갔다 오니 짧은 말만 준비해 명절 덕담이 낄 자리가 줄고,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는 가족 모임의 후미에 엉덩이를 납덩이처럼 걸쳤다가 떠난다. (…) 이 말고도 수년간 명절에 시댁에 가기 두렵다고 난리더니, 요즘엔 처가에 가기가 두렵다고 맞받아친다. (…) 형제자매 간의 분위기는 이보다 덜하지 않다. 꽉 막힌 이해관계는 어떨 땐 탱크로, 어떨 땐 면도날로 얼굴을 바꾼다. 오붓한 명절은 고사하고 속 좁고 다라운 우리의 일면이다. 이 정도면 어린 자식을 부모가 사는 고향으로 택배로 보내고, 오토바이에 선물을 싣고 고향 고행길에 나서는 극성스런 중국의 춘제(春節) 분위기가 부럽게만 느껴진다. 설을 맞아 경남 거제에서 부산 본가로 가던 일가족 5명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억 5000만원의 채무를 고민하던 30대 후반의 가장이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명절 ‘회귀본능’에 열 일을 뿌리치고 나선 고향이건만 그에게 친친 감긴 암담함이 삶의 의지를 꺾었을 법하다. (…) 어찌 보면 없는 사람에게 명절 때면 도지는 울컥증 탓이 컸을 것이다. 자신이 서 있는 세상이 끄트머리 같지만 서 있으면 포근해지고 힘이 솟는 고향집 뒤뜰도 있는데…. (…) 누구나 벼랑 끝 단상을 하나 정도는 보듬고 있는 설 뒤끝이다. 선두 자리를 바꿔 가며 대열을 이끄는 기러기 떼처럼 서로를 더 많이 격려해야 하겠다.”
-벼랑끝 새해 덕담(서울신문 ‘씨줄날줄’ㆍ정기홍 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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