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마지막 잎새의 작가 오 헨리의 작품 중에 경찰관과 찬송가가 있다. 추운 겨울을 맞게 된 노숙자는 따뜻하고 아늑한 장소를 찾아 교도소 행(行)을 계획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무전취식, 쇼 윈도 깨기, 도심에서의 고성방가, 신사의 우산 훔치기 등을 저질렀으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어 체포되는 데 실패한다. 늦은 밤 교회 앞을 서성이다가 찬송가 소리를 듣고 크게 참회한다. 그때 경찰관이 나타나 심야에 공공장소를 배회하는 수상한 행위란 이유로 그를 체포하고, ‘3개월 동안 섬 교도소에 감금’되는 판결이 나온다.
▦지난해 전북 전주의 한 건설현장에서 30세 탈북자가 노트북 2대를 훔쳐 나오다가 체포됐다. 그는 “북에서 함께 내려온 딸과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어 교도소 노역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몇 년 전 대구시에서 한 노숙자가 심야에 식당에 들어가 밥을 훔쳐먹다가 붙잡혔다. 근로자로 착실하게 살던 그는 빚 보증을 잘못 서서 거리로 내몰렸다. 막노동을 마치고 허기를 채우려고 영업이 끝난 식당을 돌아다녔다. 그는 자신을 불구속 입건하려는 경찰관에게 “구속해 교도소로 보내달라”고 애걸했다.
▦소설 ‘레미제라블’ 주인공 이름을 인용한 장발장법 논란이 무성하다. 영업이 끝난 분식집에 몰래 들어가 라면을 끓여 먹고 동전통과 라면 10개를 들고 나왔다. 그에게 징역 3년6개월이 선고됐다. 배추 두 포기를 뽑아가다가 주민에게 들키자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로 자신을 붙잡으려는 주민을 수 차례 때린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도 징역 3년6개월이 선고됐다. 분식집에 들어가 라면을 훔쳐먹은 게 여러 차례이고(상습절도), 배추를 강탈하고 주민에게 상처를 입혔기(강도상해) 때문이다.
▦특별법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된 결과다. 대검찰청은 “상습절도는 특가법 대신 형법을 적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지만 그 형법도 6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판결은 검찰공소장에 따랐고, 검찰은 법규정에 따랐을 것이다. 정해진 형량에 맞춰 더하기 빼기만 한다면 검사나 판사 대신 자판기나 컴퓨터를 앉혀놔도 된다. 공소장에서 인성이 배제되고, 판결에 상식이 스며들지 못한다면 검사와 판사가 사회적으로 존경을 누릴 이유가 없다. 법조문 정비나 위헌판결 여부가 전부일 수도 없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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