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저술가·신경학자 올리버 색스… 시한부 선고받고 인생 소회 밝혀
영화 ‘사랑의 기적(Awakening)’의 원저작자이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 여러 저술로 잘 알려진 미국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81)가 최근 말기암 선고를 받았다. 9년 전 수술 받은 안암(眼癌)이 간으로 전이돼 병원에서 여명 몇 개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색스는 자신에게 남겨진 길지 않은 삶을 가장 윤택하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단편의 자서전 쓴 것에 착안해 글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쓴 자서전은 조만간 책으로 나올 예정이지만 그에 앞서 색스는 말기암 선고를 받고 자서전을 쓰면서 느꼈던 인생 이야기를 뉴욕타임스 기고로 털어놨다. 지난 19일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면에 실린 색스의 ‘내 인생(My Own Life)’ 칼럼을 요약한다.
한달 전 나는 건강상태가 좋았다. 심지어 양호하다고 느꼈다. 81세에 여전히 하루에 1.6㎞ 수영을 한다. 하지만 내 운은 다 했다. 몇 주 전 나는 간에 여러 종양이 전이 된 것을 알게 됐다. 9년 전 안구흑색종으로 눈에 종양을 발견했다.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방사능, 레이저치료를 했지만 결국 한쪽 시력을 잃었다. 이 같은 종양전이는 매우 드물다. 나는 불행한 2%에 속한다.
첫 진단 이후 9년간 건강상태가 좋았던 것에 감사하지만 지금 나는 죽음과 직면해 있다. 진행은 더딜지라도 암은 내 간의 3분의 1를 차지하고 있고 이 특별한 종류의 암을 멈출 방법은 없다.
남은 수개월을 어떻게 살지 결정하는 것은 나한테 달렸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여유롭고 깊이 있고 생산성 있게 살아야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글 가운데 용기를 얻는다. 그는 65세에 병세가 위중해져 1776년 4월 어느 날 ‘나의 삶’이라는 짧은 자서전을 썼다.
흄은 ‘나는 온화하고, 분노를 억제하고, 열려있고, 사회적이고, 유머가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지만 증오에 다소 예민하고 내 모든 열정을 조절한다’고 적었다. 나는 흄과 다르다. 나는 사랑하는 관계와 우정을 즐기는 반면 진정한 증오는 없지만 온화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격렬한 기질이 있고 폭력적이며 열정이 과도하다.
흄의 에세이 한 줄이 나를 깨운다. 그는 ‘삶 속에 있는 것보다 거기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더 힘들다’고 썼다. 지난 며칠간 나는 높은 곳에서 풍경을 보듯 내 삶을 볼 수 있었다. 삶을 끝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반대로 그 시간에 나는 강렬하게 살아있고, 내가 사랑한 것들에 작별을 고하고, 우정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 힘이 된다면 여행도 하고 이해와 통찰력을 한 단계 높인다고 느낀다. 이는 대담함, 명확함, 솔직함을 동반한 것이다. 세상과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시간에는 약간의 재미를 위한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불필요한 무언가를 위한 시간이 더는 없다는 것이다. 내 자신, 내 일, 내 친구에 집중해야 한다. 더 이상 매일 밤 뉴스를 보지 않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 같은 논쟁이나 정치에도 더 이상 관심 쏟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무심이다. 나는 중동문제와 지구온난화, 불평등 확대를 걱정하지만 더 이상 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속하는 것들이다.
나는 지난 10년 아니 그 이상 주위 사람들 누구보다도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왔다. 내가 느끼는 각각의 죽음은 갑작스럽고, 자신의 일부를 억지로 떼어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죽으면 그들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은 채울 수 없는 구멍을 남기고 간다. 그 자신의 길을 찾고, 그 자신의 삶을 살며, 그 자신의 삶을 죽는 모든 인간은 고유의 개인이고 유전학적이며 신경학적인 운명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나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뚜렷하게 나는 ‘감사’를 느끼고 있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 받았다. 많이 받았고 답례로 무언가를 주었다.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 특히 작가와 독자들과 교류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름다운 지구에서 지각하는 존재였고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그것만으로 큰 특혜와 모험이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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