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뒤 21일 격리 관찰 기간 끝나
"보호의 입고 2시간, 무더위에 탈수… 인력 부족해 육체적 한계 몰리기도"
“중환자실에서는 환자들의 미세한 숨소리 하나까지도 귓가에 울렸다. 자신 있게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도 모르게 부츠 안에 신어야 할 덧신을 밖에 신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 탓일까. 어느덧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에볼라 긴급 구호대 1진으로 활약했던 해군 의무장교 이태헌 대위가 전한 당시 상황이다. 이 대위를 비롯한 대원 9명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한달 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공포와 사투를 벌였다. 이들은 귀국 후 21일간의 격리 관찰기간이 끝난 지난 15일 인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마다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처음부터 긴박함의 연속이었다. 동료 대원 1명이 채혈 과정에서 주삿바늘이 손가락에 닿았다. 활동 개시 1주일 만에 벌어진 충격적인 사고였다. 대원들 사이에 감염 우려가 엄습했다. 이 대원은 독일로 후송돼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먼저 귀국했지만 이날 간담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더위도 힘겨웠다. 박교연 간호사는 “낮 근무에 2시간 동안 옷(보호의)을 입고 일을 하다 보면 땀이 너무 많이 나서 탈수가 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에볼라 감염 환자 1명 당 의료진이 최소 2, 3명은 달라붙어야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국내 의료진보다 환자가 더 많은 경우가 잦아지면서 육체적인 한계에 내몰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앞에서 목숨을 잃는 환자들을 지켜보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이 대위는 “두살배기 환자가 죽어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기 어머니의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하는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최우선 간호사도 “퇴원하는 환자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가 표정이 너무 안 좋길래 물었더니 아내와 부모, 아이를 모두 에볼라로 잃었다고 했다”며 “어찌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지 상황이 점차 호전되면서 의료진도 기운을 냈다. 오대근 중령은 “가장 보람된 때는 사망 환자보다 퇴원 환자가 많아지는 날이었다”고 말했다. 홍나연 간호사는 “에볼라로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환자가 경비원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회고했다.
이들이 낯선 곳에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사이 가족들은 가슴을 졸였다. 이 대위의 부모는 “좋은 뜻은 알겠지만 차마 내 자식은 보내지 못하겠다”며 눈물을 보였고, 홍 간호사의 남자친구는 “왜, 미쳤어, 죽고 싶어”라고 소리치면서 말렸지만 이제는 더 애틋한 관계가 됐다고 한다.
현재 시에라리온의 신규 에볼라 감염환자는 감소세로 돌아서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대원들의 두 어깨는 한결 가벼워졌다. 그 사이 시에라리온 3,300명을 포함해 아프리카에서만 1만여명이 숨졌다. 이들에 이어 긴급구호대 2진이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 인근에서 활동 중이다. 23일부터는 구호대 3진이 바통을 넘겨받는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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