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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 핀치 뒤에 기회 있다

입력
2015.02.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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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리 인상ㆍ中 경제 둔화 대비

기업 군살 빼기로 기초체력 배양

선택과 집중으로 유망주 선발해야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주춤하고 있다. 앞으로 5년 후 다가올 2020년 우리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사진은 지난 18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삼성전자의 '2015 서남아 포럼' 모습. 삼성전자 제공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주춤하고 있다. 앞으로 5년 후 다가올 2020년 우리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사진은 지난 18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삼성전자의 '2015 서남아 포럼' 모습. 삼성전자 제공

브라질 월드컵 H조 예선 첫 경기, 대한민국 대 러시아 전 이야기다. 팽팽한 접전 속에 0대 0으로 전반을 마치고, 후반 중반에 투입된 이근호가 선취 골을 넣었다. 이후 러시아는 그야말로 적극 공세를 펼쳤고, 결국 우리는 5분여가 흘러 동점골을 허용했다. 첫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뒤 두 게임을 내리 지고 예선에서 탈락했으니 러시아전 동점골이 통한의 한 골이었던 셈이다. 필자가 이 경기에서 얻은 교훈은 유리할 때 위기가 온다는 점이다. 반대로 말하면 핀치(pinch)에 몰렸을 때 오히려 기회가 온다는 의미다. 문득 요즘 우리 기업들에게도 필요한 교훈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외 경제 전망이 어둡다. 내수의 불씨가 희미해지고 있다. 전년동월 대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에 3.9%, 2분기 3.5%, 3분기 3.2%, 4분기 2.7%로 점점 떨어지고 있다. 최근 다섯 분기 연속 0% 대의 성장을 기록하는 등 저성장 고착화의 우려도 크다. 일본식 장기불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세계경제도 미국만 ‘나홀로 호황’일 뿐 곳곳이 지뢰밭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뜻하는 그렉시트(Grexit) 우려는 한 고비를 넘겼지만,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 불안은 걱정스럽다.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던 중국 경제마저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으니 어두운 먹구름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듯하다. 필자의 기우라면 좋으련만 많은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으니 우리 기업들도 대비를 서둘러야 할 듯하다. 축구 마니아까진 아니지만 필자도 축구에 관심이 많다. 축구 이야기를 빗대어 우리 기업들에 조언하고 싶다.

패러다임의 전환

1974년 서독 월드컵 당시 네덜란드는 혁신적인 전술인 ‘토탈사커’, 즉 팀 전원이 포지션을 바꿔 가며 상대를 무너뜨리는 전술로 전세계 축구팬들을 경악하게 했다. 우리나라를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까지 올려놓았던 그 전술이다. 선수 각자의 포지션에 기초한 전술을 파괴하는 전략, 이런 게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우리 기업들도 혁신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눈 여겨 볼 만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구글은 더 이상 단순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회사가 아니다. ‘구글 엑스(X)’로 알려진 프로젝트를 통해 드론, 구글 글래스 같은 최첨단 융합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또 구글 지도와 자동차 개발에 이어 자동차보험 판매까지 나서고 있으니 서비스?제조?금융업 등 뛰어드는 산업의 경계선도 없다. 우리도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기존 제조업 중심의 패러다임으론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다행히 우리 대표기업들도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물인터넷 사업, 의료와 제조업 융?복합 등에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니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도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른 기업들의 이야기일 지 모른다. 제조업?서비스업 간 양방향 융?복합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보다 많은 기업이 공유해야 한다.

지난 15일 스웨덴에서 열린 '2015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대회에서 현대자동차 소속 선수들이 i20 WRC 차량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 제공
지난 15일 스웨덴에서 열린 '2015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대회에서 현대자동차 소속 선수들이 i20 WRC 차량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 제공

기초체력 강화

축구에서도 선수의 기초체력이 중요하다. 토탈사커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달리기에 선수들이 충실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기업들도 기초체력을 탄탄히 해야 한다. 군살도 빼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선제적인 구조조정 이야기다. 최근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 중 24개 그룹이 ‘구조적 장기불황이 우려된다’고 할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위기가 아닌 만큼 기업들이 군살빼기를 서둘러야 한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문제는 해당 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이 기업이 속한 산업 전반, 연계된 금융기관, 더 나아가서는 국민에 이르기까지 피해를 끼칠 수 있다. 비효율적인 기업 운영으로 경제의 역동성도 떨어트릴 수 밖에 없다.

긍정적인 징후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전문분야에 집중하려는 구조조정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화와 삼성의 빅딜이 세간의 화제였다. 한화는 석유화학과 방위산업을 주력으로 하기에 이번 인수로 규모의 경제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반대로 삼성은 기존 주력산업인 전자에 집중할 전망이다. 이들의 ‘집중과 선택’ 전략은 많은 기업이 고민해야 할 화두다.

최고의 선수 선발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클럽 중 하나다. 이 팀은 늘 세계 최고의 선수를 영입한다는 점에서도 유명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시야스 골키퍼 등 톱 레벨의 선수들은 다 이 팀에서 뛰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스타급 선수 뿐만 아니라 유망주 영입에도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기업도 마찬가지다. 해외로 눈을 돌려 유망주 발굴에 나서야 한다.

지난해 말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개최한 ‘중국의 추격과 우리기업의 전략’ 세미나에서 한 학자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만약 샤오미가 덜 성장했을 때 삼성이 인수했더라면 세계 핸드폰 시장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라는 내용이었다. 샌드위치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중?일 양국 기업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근 일본 오릭스의 현대증권 인수를 필두로 우리은행, KDB대우증권 인수에도 관심을 보이는 등 일본 자본의 국내 금융회사 인수합병 공세가 거세다. 중국도 해외 인수합병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3분기 동안 중국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은 176건으로 전년동기 대비 31% 성장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또한 같은 기간 해외 인수합병 거래총액은 408억달러 규모에 달했다. 미래 글로벌 산업지형도를 고민해야 할 때인 만큼 우리도 해외로 눈을 돌려 유망주를 선발해야 한다.

축구경기에서 한 골을 넣으면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져 위기가 온다. 우리 기업들은 제조업을 주력으로 단기간에 세계적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하지만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세계 10강(强) 근처에 있다.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닌 만큼 미래 먹거리 사업을 찾는 혁신과 기초체력을 쌓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2020년 우리는 세계 몇 강의 위치에 있을까.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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