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시장 양산하는 전자카드, 진정한 규제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프로스포츠의 근간을 뒤흔든 승부조작 사건을 계기로 수면에 드러난 불법 스포츠 도박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23일에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 전체회의에 상정될 2018년 전자카드 전면 시행안에 대한 논란이 가속되고 있다.
사감위의 전자카드 전면 시행안은 경마, 경륜, 경정, 카지노, 복권은 물론 프로스포츠를 대상으로 하는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등 모든 합법 사행산업을 이용할 때 개인의 신상정보가 입력된 카드에 금액을 충전한 뒤 사용해야 하는 법적 제도다.
지난 2008년 53조원에 달했던 불법도박의 규모는 매출총량제와 영업장 수 제한, 구매 상한액 조정, 온라인판매 금지 등 합법사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시행되면서 4년 사이에 무려 22조원이 늘어난 75조원으로 급증했다. 만약 이대로 전자카드가 전면 도입되어 합법사업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해질 경우, 이에 따른 풍선효과로 인해 2018년의 불법도박 규모는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자카드가 전면 도입된다면 카드 발급의 불편함은 물론, 발매처리 지연, 신분 노출에 대한 거부감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접근이 용이하고 사행성을 부추기는 불법 도박시장으로의 이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지난 2013년 12월에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조사한 ‘투표권 전자카드 도입효과 연구용역’ 에 따르면, 투표권 이용 고객 중 전자카드 도입 시 불법도박사이트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자가 무려 38.44%에 이를 정도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현재 중국이나 동남아 등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불법도박 운영자들은 단속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문자메시지나 메일을 이용해 단골 고객에만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고 잠깐 동안 영업을 한 뒤 사이트를 폐쇄하고 자취를 감춰 처벌 역시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사감위가 꺼내든 전자카드 전면 도입은 합법사업에 대한 과도한 중복규제일 뿐만 아니라, 불법도박 시장의 확대를 부추기는 심각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체육계에서는 합법사업을 즐기는 고객들이 불법시장으로 이탈한다면, 체육진흥기금 급감으로 인해 국가체육재정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정부 예산대비 체육예산의 비중이 단 0.28%에 불과한 현실에서, 체육진흥기금은 체육예산의 86%를 부담하고 있는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중 84%는 체육진흥투표권을 통해 조달되고 있다. 체육진흥투표권 판매점을 조사한 결과 전자카드 도입 시 96.6%가 매출의 감소를 예상했으며, 발매액 감소비율은 54.86%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게다가 구매를 중지하는 고객들 중 불법도박으로 이탈할 비중은 무려 77.9%에 이르렀다.
이러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통해 나타나는 폐해는 판매점 운영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영세한 점주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현재 전국 6,500여개의 판매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판매점주의 월평균 수입은 190만원 수준으로, 지난 9일 통계청에서 집계한 2인 이상 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득 431만4천334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70만원에 달하는 임차료와 수도 광열비(25~30만원), 인터넷 회선비(4만원) 등 월 고정비용을 생각하면 실제 수익은 훨씬 줄어든다. 만일 전자카드 도입으로 인해 수입이 큰 폭으로 급감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생계에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17일에 전국 토토판매점 협회 대표 일동(이하 전토협)은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을 관할하고 있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를 찾아 전자카드 도입 철회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토협 대표는 “판매점주들의 생계를 건 적극적인 불법도박 근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에도 수십 건의 불법도박 홍보 문자 메시지가 오고 있는 실정” 이라며 “사감위는 도박중독자들을 양산하고 사회의 해악이 되고 있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차단하고 근절할 수 있는 올바른 방안을 찾아 주기 바란다”고 읍소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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