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지나고 3월이 가까우니 정말 봄이 턱밑까지 왔다. 다가올 봄 풍경이 이러했으면 좋겠다. “화창하고 고운 봄이 한창일 때 높은 데 올라가 사방을 바라본다.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가 막 개자 나무는 목욕한 듯 깨끗하고 먼 강물은 늠실늠실, 버들가지는 파릇파릇. 비둘기는 구구 울며 날개를 치고, 꾀꼬리는 고운 나무에 모여 있네. 온갖 꽃 피어서 비단 휘장 쳐놓은 듯 푸른 숲과 어우러져 한층 더 아롱거리고 무성한 푸른 풀밭에는 소들이 흩어져 풀을 뜯고 있네. 여인은 광주리 끼고 여린 뽕잎을 따느라 섬섬옥수로 부드러운 가지를 당기면서 주고받는 노랫가락, 어느 무슨 곡조인가? 길 가는 이, 앉아 있는 이, 가다고 돌아오는 이들, 따스함을 즐기는 그 모습 눈에 삼삼하다네.”
고려의 문호 이규보가 봄날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지은 ‘춘망부(春望賦)’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이어 “경치와 형편에 따라, 어떤 이는 바라보아 기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아 슬프기도 하며, 어떤 이는 바라보아 흥겹게 노래하고, 어떤 이는 슬퍼 눈물을 짓나니, 제각기 유형에 따라 사람에게 느낌을 주니, 그 천만 가지 마음의 단서가 어지럽기만 하네”라고 하였다. 똑 같은 봄이건만 봄을 맞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부귀한 자는 아름다운 여인을 끼고 술잔을 마주하고 풍악을 들으면서 아름다운 봄 풍경을 즐기지만 남편을 먼 곳에 보낸 여인은 쌍쌍이 나는 제비를 바라보며 난간에 기대서서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이번 봄은 다 함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물동춘(與物同春)’이라는 말이 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므로 사람에게는 인(仁)에 해당한다. 봄이 만물을 소생하듯이 인은 만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니, 여물동춘은 임금의 어진 정사로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을 이른다. 조선 초기의 문인 홍귀달은 대궐의 환취정(環翠亭)에 붙인 기문에서 “봄바람이 살살 불어와 훈훈한 남녘의 기운이 백성의 분노를 푸니 초목이 기뻐서 웃으리라. 만물이 제 때를 만나는지 살피고 인이 두루 행해지지 못할까 두려워하시리라. 이러한 때가 되면 유유한 생명력이 만물과 더불어 봄을 함께 하리라”라 하였다. 임금으로 하여금 인의 마음으로 백성을 보살피면 산천초목도 기뻐 웃을 것이요, 이것이 봄을 함께 하는 뜻이라 간언을 올린 것이다.
조선의 성군 정조대왕은 백성들과 봄을 함께 누리고자 한 임금이었기에 “부상당한 사람처럼 백성을 보아서 만물과 더불어 봄을 함께하는 것이 왕자(王者)의 마음이다”라 하였다. 과거 시험에 봄을 제목으로 내걸고 그 의미를 논술하게 하였다. 이에 윤기라는 선비가 글을 지어 올렸다. 세상 어느 곳이든 봄이 없는 곳이 없고 한 해 어느 날이든 봄이 아닌 날이 없지만, 정작 백성들은 봄이 왔는데도 봄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 하고, 그 원인을 중화(中和)를 극진히 하지 못한 데서 찾았다. 중화는 치우치거나 어그러짐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로, 중화에 이르게 되면 천지는 합당한 위치에 자리하게 되고 만물은 절로 제 삶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중용(中庸)’의 풀이다.
윤기는 이를 근거로 하여 “사해의 봄은 흉중의 봄을 녹여 만든 것이요, 만물의 봄은 마음의 봄을 다스리는 데서 나온다. 명령을 내리면 바람과 우레가 북을 쳐 춤추게 만들고, 덕과 인을 베풀면 비와 이슬이 적셔주게 된다. 사해의 만물 중에 어떤 것도 봄을 맞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한 해 가운데서 하루라도 봄이 아닌 날이 없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붙였다. 그리하여 자연재해가 사라지고 풍년이 들어 백성들은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홀아비나 과부, 고아와 독신자, 주리고 병든 자 등 버림 받아 나뒹굴어도 호소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만물과 더불어 봄을 만나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요, 보고자 하는 봄이다. 치우치지 않고 어그러짐이 없는 ‘중화’의 정치가 이루어낼 수 있는 경지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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