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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말 국민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소리

입력
2015.02.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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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에게 이런 4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해보자.

① 덜 내고 덜 받기 ② 더 내고 더 받기 ③ 더 내고 덜 받기 ④ 덜 내고 더 받기.

제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국민들일지라도 선택의 결과는 뻔하다. 덜 내고 더 받을 수 있다면, 굳이 다른 선택지를 염두에 둘 이유가 없다. 부자든 서민이든 세금을 많이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고, 나라에서 주는 혜택을 거부할 이도 많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증세 없는 복지’ 카드를 꺼내 들었을 때, 상당수 국민들이 갸우뚱하면서도 강한 지지를 보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모두가 바란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현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다. 정부가 덜 내고 더 받게 해주겠다는 어지간해서는 성립 불가능한 조합을 지난 2년간 고집해온 탓에 국민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엊그제 얼개가 확정된 기업소득환류세제가 단적인 예다. 도입 취지 자체야 백 번 옳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 적자면 이렇다. ‘이명박 정부 때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대폭 낮춰줬지 않느냐. 세금을 줄여주면 투자를 늘려서 경제가 활성화되길 기대했던 거다. 그런데 깎아준 세금을 사용하지 않고 금고 속에 차곡차곡 쌓아만 두고 있으면 말이 안 된다. 벌어서 투자나 배당, 임금인상 등으로 사용하지 않은 돈(사내유보금)에 대해서는 다시 세금을 물리겠다.‘

취지대로 법이 작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을까만, 결과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해당 기업들은 정부가 의도하는 것처럼 세금을 안 내기 위해 돈을 더 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세금폭탄을 피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에만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투자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금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 ‘요란한 빈 수레’가 될 공산이 크다. 외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법을 만들다 보니 현대차그룹의 한전 부지 인수비용까지 거의 통째로 투자로 인정을 해주면서, 괜한 특혜 논란까지 자초했다.

박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지하경제 양성화도 그렇다. 말은 좋지만 정부가 공언한다고 하루 아침에 성과가 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금부터 차곡차곡 체계를 구축하는 건 적극 환영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세수 확보 성과를 거두겠다고 하면 부작용만 커질 수밖에 없다. 무리한 세무조사는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걸 정부도 모를 리 없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게 바로 우회 증세, 편법 증세다. 덜 내게 해주겠다면서 담뱃값을 올리고,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더 토해내라고 하니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뒤통수를 맞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너무 당연하다.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을 둘러싼 큰 태풍이 한 차례 휩쓸고 간 지금, 국민들의 생각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이젠 덜 내고 더 받을 수 있다는 무모한 기대에 매달리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세금을 더 내거나, 복지를 줄이거나, 혹은 둘 다 같이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현실적인 해법이 도출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단 나뿐이 아닐 테다.

바뀌지 않은 건 단 한 사람, 박 대통령뿐이다. 최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했다는 발언은 참 암울하다.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경제도 살리고 복지도 더 잘해보자는 뜻인데, 이것을 외면하면 국민을 배신하는 게 아니냐. 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국민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하면, 그게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소리냐.”

박 대통령의 진심에까지 현미경을 들이댈 생각은 없다.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그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정말 국민들을 배신하는 행위가, 또 정말 국민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소리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이라고 믿는다. 국민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①번이나 ②번이 답이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유독 혼자서만 ④번이 답이라고 우기는 건 정말 대통령으로서 할 소리가 아니지 싶다. 설 연휴 동안 깊이, 아주 깊이 고민하시고 그 진심을 내려 놓으시길 간곡히 당부 드린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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