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전파를 탄 JTBC 드라마 ‘하녀들’ 방영이 한창이던 2월 10일 동명의 소설이 출간됐다. 책 표지에는 ‘JTBC 조선 연애사극 하녀들 원작소설’이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박혔다. 소설가 이름을 확인하니 드라마 작가의 이름과 같다. 이걸 원작소설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최근 서점가에는 ‘원작인 듯 원작 아닌 원작 같은’ 소설들 투성이다. ‘비밀의 문’ ‘빛나거나 미치거나’ ‘징비록’ 등 동명의 소설과 드라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오는 것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다. ‘비밀의 문’은 드라마 콘텐츠를 소설가가 글로 풀어 쓴 것이고,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드라마 작가 현고은씨의 소설을 다른 작가가 드라마화한 것, ‘징비록’은 유성룡의 책을 원저로 드라마와 책이 동시에 나온 경우다.
이 책들이 모두 원작을 표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드라마 개봉에 즈음해 서점가에 풀린 동명의 소설은 독자의 혼선을 야기하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대박 흥행에 성공한 영화 ‘변호인’ ‘국제시장’ ‘명량’은 모두 소설로 출간됐다. 원작이 아닌 영화를 소설화한 것이지만, 뭐가 먼저인지 따지는 독자는 많지 않았다. ‘원작이라는 오해’의 가능성을 방치 혹은 유도했다는 비판에서 출판사와 영화, 드라마 제작사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이처럼 인위적인 원작 만들기가 성행하는 배경에는 “검증된 콘텐츠에 목마른 시대”가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원작의 유무가 드라마 흥행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제작사에서는 없는 원작도 만들고 싶어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원작의 탄탄한 서사가 완성도 있는 영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대중의 신뢰 때문이다. 출판계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영화 혹은 드라마의 원작소설이란 말만큼 좋은 홍보 문구도 없다.
긍정적인 시각이 없지는 않다. 출판계 다른 관계자는 “영상으로 접한 콘텐츠를 텍스트로 다시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텍스트에서 영상으로의 일방 교류가 쌍방향 교류로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안타까운 건 원작이란 말의 권위가 실추되는 현장을 목도하는 일이다. 소설 ‘쥬라기 공원’을 읽으며 문학의 한판승을 선언하고, 영화 ‘재키 브라운’을 보며 영상의 존재이유를 절감하던 시절은 이제 끝난 것일까. 원작이란 이름으로 영상에 무임승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출판계의 열악한 현실도 씁쓸하긴 마찬가지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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