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번잡함을 피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육아휴직자의 특권 중 하나. 아들과 둘이서 일찌감치 고향집에 내려왔다. 직장 다니는 아내는 며칠 뒤 합류하기로 했다. 이번 설엔 아들과 함께 차를 몰고 내려오길 강력하게 희망했으나 어쩔 수 없이 비행기로 내려왔다. 아내가 ‘어린 애를 혼자 뒤에 태우고 350㎞의 거리를, 4~5시간 운전해서 가는 건 무리’라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다른 교통편에 비해 무난하게 왔다고 볼 수 있겠지만 결코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이 아빠는 기저귀와 물티슈, 그림책, 장난감, 약간의 간식이 든 가방을 맨 채 아들을 안았는데 등과 이마에 땀이 줄줄 흘렀다. 하필이면 나서는 길에 비까지 내려 아들을 안은 팔로 우산까지 받쳐들어야 했다. 나머지 손은 열흘 정도 묵는데 필요한 짐을 담은 캐리어를 끌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내 몰래 집으로 되돌아가 차를 몰아 내려가고픈 충동을 억누르느라 땀이 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혼자 아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길은 생각 이상으로 힘겨웠다.
사실 운전을 해서 내려간다고 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무거운 짐을 들 것도 없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도 필요 없다. 좋아하는 라디오를 듣거나 이것저것 먹으면서 갈 수도 있는 일이다. 운전이라는 약간의 수고가 따르긴 하겠지만 운전으로 발생하는 편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 이 뿐인가. 짐 싸는 일도 한결 수월해진다. 한복이나 정장 구김 걱정도 할 필요가 없고, 짐을 콤팩트하게 싸야 하는 데서 오는, 이 그림책을 가져갈까 저 장난감, 인형을 데리고 갈까 하는 둥의 고민도 필요 없다. 장기간 체류에 필요하다 싶은 물건들은 대부분 가져갈 수 있다. (어찌 된 일인지, 아들 짐은 아빠 짐의 배가 넘는다.) 한마디로 차를 몰고 가면 이 아빠는 편해지고 넉넉하게 가져간 ‘살림’ 덕분에 아들은 여행지에서도 윤택하게 보낼 수 있다. 또 고향집에 내려와서도 아들을 대동해 이리저리 인사 다니기에도 용이한 점 등등 자가용 운전의 장점은 손으로 꼽기 힘들다.
문제는 아들의 지루함. 이 문제에 대비해 아들 낮잠 시간에 맞춘 출발, 놀이공원 방문 또는 온천욕 등 다양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요즘 낮에 잠들면 두 시간 정도는 쭉 자는 만큼 잠든 사이 복잡한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난다면 아들의 지루함을 상당부분 줄일 것으로 봤다. (평소 아들과 단 둘이서 당일치기 근교 여행을 다니면서 검증했다.) 또 이후 잠에서 깨면 중간 중간 휴게소에 들리는 것 외에도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주변 관광명소나 맛집을 들러가며 쉬엄쉬엄 내려갈 참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에도 아내는 반대를 했는데, 간곡하게(?) 반대하니 어쩔 수 없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겼을 때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내 뜻을 거슬러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지 않는 편이다.)
이 문제로 고민하다 주변 사람들은 어떤가 하고 들여다봤다. ‘여자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제일 편하다’고 조언한 아빠를 제외한 아빠들은 쉬엄쉬엄 가면 무리 없을 것이라고 했고, 아내를 포함한 엄마들은 흔들림 증후군 등을 거론하며 최악의 경우까지 들어 반대했다. 십인십색,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다는 게 지론이지만 이 아빠는 그 반응들이 ‘엄마’와 ‘아빠’로 갈린 점에 주목했다.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육아에 관한 한 엄마들이 아빠들보다 유난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TV에서 의사들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고 있는 탓인지 주변엔 아이 건강, 안전 문제로 고심하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감염 우려로) 어린 아이는 재래시장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는 엄마, 날씨 쌀쌀하다며 하루 종일 ‘방콕’하는 엄마, 아이 옷은 꼭 전용 세탁기로 삶아 입힌다는 엄마, 외출 중에 수시로 아이 손을 물티슈로 닦이고 세정제 칠을 하는 엄마와 흔들림 증후군을 제기한 그 엄마까지…. 물론,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만 그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아이들이 잃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휴직까지 하고 아들과 지낸 지 8개월. 이 아빠 경험으로 한 줄 더 붙이면 아이는 엄마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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