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해석서비스 7년, 1만 건 돌파
퇴계 이황 시·어사 박문수 간찰 등 소중한 사료 우연히 발견 성과도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항아리에 한시가 쓰여 있는데 내용을 알고 싶습니다.”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고전번역원 한문고전 자문서비스실. 노성두(53)연구원이 각지에서 답지한 족보와 한시, 간찰(편지) 등을 번역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노 연구원은 2008년 2월부터 7년째 일반인들의 소장품에 기록된 한문이나 한자를 해석해 주고 있다. 고전번역원이 “일반인들이 고전과 좀 더 친숙해 질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한문고전 자문서비스’인데, 지난달 말 서비스 건수 1만건을 돌파했다. 최근에는 한자에 익숙한 고령자들이 줄면서 연평균 1,000여건 정도던 번역건수가 1,600건까지 급증했다. 노 연구원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병풍과 족보, 칼, 혹은 항아리와 벼루 같은 일상집기 등을 진열해 놓고 바라보곤 하지만 정작 거기에 쓰여진 글의 내용은 모를 때가 많다”며 “뜻을 알게 되면 물건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도 더 생긴다”고 말했다.
의뢰 건수가 많기도 하지만, 고문서 해석작업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특히 초서(草書)의 경우 쓰는 사람의 필법이나 성향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에 탈초(脫草ㆍ초서체를 정자체로 바꾸는 작업)나 해석이 어렵다. 글쓴이와 받는이 간 사적인 대화가 오가는 간찰은 더욱 그렇다. 또 그 시대에만 쓰던 용어들은 작업을 더욱 더디게 한다. 예를 들어 ‘첨선(添線)’의 경우, 글자 대로라면 ‘실을 더한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동지(冬至)’를 뜻한다. 동지가 지난 후 밤이 길어지면 매일 바느질 양이 조금씩 늘어갔다는 데에서 유래된 단어다. 노 연구원은 “평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이 없으면 해석 불가능한 단어들이 많다”고 했다.
우연히 발견한 소중한 사료들도 있다. 실제로 경기도에 사는 A씨가 의뢰한 한시 작품은 번역결과 퇴계 이황(1501~1570)이 납매(蠟梅ㆍ음력 섣달에 꽃이 피는 매화)에 대한 시를 읽고 감상에 빠져 쓴 작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08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어사 박문수의 간찰이 의뢰되기도 했다. 이외에 중국의 고위 관계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낸 글씨, 일본 문화계 관계자가 김영삼대통령에게 선물한 족자 등도 발견됐다.
당혹스러운 상황에 부딪히기도 한다. 무작정 작품을 들고 고전번역원을 찾아와 “당장 해석해 달라. 한문학자가 왜 빨리 해석 못하느냐”며 닦달하기도 하고, 고문서의 감정가가 얼마인지 묻기도 한다. “미국에 사는 손자에게 한자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며 엉뚱하게 작명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노 연구원은 “어떤 한자이며, 내용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것이지, 의뢰품의 진위 여부나 감정가격을 책정할 순 없다”며 웃었다. 또 의뢰자가 이메일로 의뢰하면서 원문과 다른 오ㆍ탈자를 집어넣는 바람에 번역에 애를 먹기거나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한편, 한문고전 자문서비스를 원할 경우, 글씨를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center114@itkc.or.kr)으로 보내거나 한국고전번역원(02-6263-0455)에 의뢰하면 된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