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인돼 온 관습적 폭력에 독설 날려
“세상엔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묵살하거나 억압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
듀나의 에세이집 ‘가능한 꿈의 공간’(한겨레출판)이 나왔다. 듀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얼굴 없는 논객의 원조, 트위터에 득실대는 까칠한 똑똑이들의 조상, 좌도 우도 편들지 않음으로써 공공의 적이 되길 택한 이 시대 리버럴리스트의 한 전형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매체 기고 글과 새로 쓴 글들을 엮은 이번 에세이집은 한국의 전통 가치와 사사건건 대립해온 저자의 ‘투쟁 일기’에 가깝다.
관습이란 이름 아래 감춰지고 묵인돼온 다양한 폭력을 저자는 영화의 창을 통해 샅샅이 색출하고 비판한다. 영화 ‘써니’의 마지막 장면에서 친구(춘화)의 우정에 감복해 울음바다가 된 장례식 장면을 저자는 “재수 없다”는 한 마디로 평한다. 후반부에서 급작스럽게 갈등을 봉합하는 연출기법 데우스 엑스 마키나(dues ex machine)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돈 많은 친구를 둔 행복’ 외에 무슨 교훈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곤 불온하게도 춘화가 돈을 미리 나눠주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생전에 유산을 나눠주는 바람에 외롭게 세상을 뜬 ‘고리오 영감’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친구들의 기억 속에 주인공으로 남고자 마지막까지 재산을 움켜 쥔 춘화의 영악함과 권위에의 집착을 미워한다.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신 영화 ‘건축학개론’은 잔인함과 비열함과 어리석음이 뒤섞인 이야기로 바뀐다. 저자에게 승민은 사랑하는 여자(서연)가 선배에게 성추행 당하는 현장을 방치하고 도리어 ‘헤픈 여자’ 딱지를 붙이는 파렴치한이다. “어떤 GV에서 한 관객이 서연과 선배가 정말 잤냐고 묻자 그(이용주 감독)는 관객 각자의 성도덕에 맡긴다고 했단다. 하지만 이건 성도덕 어쩌구의 문제가 아니다. 범죄가 일어났느냐, 일어나지 않았느냐의 문제지. ‘술 취한 누군가를 방으로 끌고 간다’를 기성품 이야기 다발로 받아 들이고 아무 생각도 안 하니까 이런 꼴이 나는 거다.”
비판과 의혹과 딴죽으로 점철된 저자의 글은 흡사 전쟁터에 쏘아 올린 한 발의 총성 같다. 곧 수많은 찬반의 총알이 날아들 것이고 평화는 기어이 깨질 것이다. 중요한 건 저자의 견해가 아니라 태도다. 대세를 위해 묻어두어야 할 것, 묻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들쑤시는 그의 태도는 이 땅에선 아마도 ‘영원히 낯선’ 것일 테고 서문에서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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