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국장 몸 낮춰 中企 가려 해도 6년 전 관련 업무 경력에 발목
"공기업도 안 되고 민간행도 막막, 차라리 국공립 대학으로 가자"
“자리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습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지방청장 A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기업 등 유관기관 문을 수시로 두드리고 있다. 다음달 말 공직자윤리법이 강화되기 전에 어디든 이직 막차를 타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는 “재취업기간이 1년 더 길어지고(2→3년), 취업제한 업무 범위가 넓어지면(소속부서→소속기관 전체) 퇴직 이후 남은 생을 실업자로 지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A씨는 아직도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그는 “취업만 시켜주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가기 힘들어진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정년까지 어떻게든 버티는 것 외엔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다”고 낙담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주요 보직을 역임한 B 국장은 중소기업 감사로 가기 위해 지난해 말 사표를 던졌다. 공직자윤리법 강화 전에 몸을 낮춰 최대한 하향 결정했지만 지난달 취업제한 판정을 받았다. 몇 년 전 해당 기업의 사소한 공시 위반 사실과 2009년 관련 업무를 한 B 국장의 이력이 발목을 잡았다. B 국장은 현재 실업자 상태다. 관련 법 개정 전 미리 출구전략을 가동한,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선배의 재취업 노력조차 물거품이 되자 공정위는 충격에 빠졌다. 한 공정위 과장은 “공시 위반은 거의 모든 기업에서 벌어지는데, 이쯤 되면 대놓고 실업자 되라는 얘기”라고 불평했다.
공직사회가 한달 앞으로 다가온 공직자윤리법 개정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가뜩이나 좁아진 재취업 문이 관련 법 개정에 따른 재취업 기간과 취업제한 업무범위 확대로 아예 닫힐 위기에 놓였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물밑에서 막판 분주하게 움직이는 공무원도 있지만, 막차도 이미 떠났다고 허탈해하는 분위기가 대세다.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지난해 중반 공공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C 국장 사례를 기적으로 받아들인다. “재취업 절차 진행 중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는데, 소리소문 없이 해당 자리를 차지했다”라며 “이후 재취업을 고려했던 인사들은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초 이직할 기관까지 모두 정해두고 명예퇴직을 신청했던 국토부의 국장 이상 4, 5명은 세월호 참사 이후 취업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지난해 말 명예퇴직을 한 해양수산부의 1급 3명 역시 어디 지원할 생각도 못하고 쉬고 있는 상태다. 정부 부처의 한 국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재취업시장도 정체가 심해 갈 곳이 없더라”라고 푸념했다. 벌써 1년 가까이 쉬고 있는 국토부의 퇴직 공직자는 “그래도 우리는 1년만 더 버티면 되는데, 취업제한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날 후배들은 정말 안됐다”고 말했다.
때아닌 박사학위 취득 열풍 조짐도 보인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공기업도 안되고, 민간업체도 다 막아놔서 박사학위 따서 국공립대학으로 가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라며 “노후생계용 박사학위 열풍이 과연 바람직한 거냐”고 반문했다. 다른 부처의 과장도 “겉으로 표시는 안 하지만 눈치 덜 보이는 박사학위가 초미의 관심사”라고 귀띔했다.
공무원들의 재취업 문턱은 이중삼중으로 높아지고 있다. 과거 3년(2011~2013년)간 퇴직 공직자가 취업 심사에서 떨어져 취업이 안된 비율은 6.7%에 불과했지만 작년엔 19.6%, 올해 1월엔 31.25%로 증가했다. 월별 취업 심사 신청 인원도 지난해 7월 21명에서 12월 45명으로 늘었다. 인사 승진 등과 맞물려 12월 신청 인원이 많은 걸 감안해도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이에 따라 공무원들 사이에선 정년 보장과 퇴직 고위 공직자 활용 방안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기재부의 공무원은 “예전엔 정년이 남았어도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다는 차원에서 퇴직 2~3년 전 산하기관 등으로 옮겼는데 이제 쥐구멍조차 막힌 상황”이라며 “가급적 정년을 채울 수 있도록 연착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금피크 도입이나 퇴직 공직자에게 원로 자문역 등의 역할을 맡기는 방안도 거론된다. “재취업 기준을 강화하는 건 동의하지만 국가가 30년 이상 키운 인적 자원을 3년간 활용하지 않는 건 국가적 낭비이자 비효율”이라는 게 공무원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이번 공직자윤리법 개정은 직무 관련성과 직무 적절성을 매우 좁게 해석해 공무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예 없애는 측면이 있다”라며 “법을 완화하는 대신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엄격히 판단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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