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ㆍ생활비 벌기 위해 공사판 누벼
만두ㆍ라면만 먹으며 행정학 공부
"예술인도 행정 알아야 권리 찾는다"
다짜고짜 손을 내민다. 굵은 손마디로만 보면 전혀 화이트칼라가 아니다. 더구나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키는 교수로 보기에는 거칠기 그지없다.
대구가톨릭대 희망나눔연구센터 책임연구교수 겸 겸임교수인 정휴준(38ㆍ사진) 박사는 이름도 생소한 문화행정전문가다. 시작은 막노동이었고, 성악을 배우며 장사를 했으며 결국에는 문화행정에 눈을 뜬 인물이다.
집은 IMF때 풍비박산났다. 군대를 갔다온 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4∼5년간 공사판을 누볐다. “이렇게 굵은 손마디가 진짜 제 모습입니다. 막노동의 증거죠. 날씨가 궂으면 신경통으로 손마디가 쑤시지만 부끄럽기는커녕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그는 어렵사리 모은 학비로 성악을 전공했다. 2005년 중앙대에서 음악학 석사학위를 딸 때에는 서울을 오가며 대구에서 식당까지 차렸다. 빚더미로 출발한 식당은 현상유지도 힘들었다. 낮에 서울서 공부하고 밤에 대구로 내려와 식당일을 하던 어느날, 술 취한 손님이 난동을 피웠다. “사장 나와”라고 고함치던 손님에게 따귀를 연거푸 맞았다. 순간 울컥했지만 입밖으로 나온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손님은 인근 중국집 배달부였다. 다음날 정 박사는 자장면을 시키면서 한 마디 했다. “같이 드시죠.” 그 후 자장면 배달부는 그의 가장 큰 원군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식당’이라는 소문과 함께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는 잘됐다. 생애 처음으로 돈을 벌어 빚을 청산했다. 그의 꿈은 박사로 옮겨갔다.
한성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행정학으로 바꾸게 된다. 예술가들의 인권과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음악행정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예술가가 행정학을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고시원에서 2년 반을 공부하며 민법과 회계 등을 독파했다. 다시 궁핍한 생활이 시작됐고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처럼 만두와 라면만 먹고 살았다. 지금도 만두만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다. 박사학위논문 주제는 문화공무원의 직무만족에 대한 연구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음악을 전공한 행정학박사가 몸담을 곳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2010년 처음 손을 내민 곳이 바로 대구가톨릭대다. 대학이 순수음악전공과 문화예술전공의 복수전공을 도입하면서 그에게 취업의 기회가 온 것이다.
순수 문화예술 관련 학생들의 현실은 가혹했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활동하는 학생이 10%도 되지 않았다. 힘든 과정을 거쳐 졸업을 했건만 학생들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했다. 순수전공시절 정 박사 자신이 뼈저리게 느꼈고 주변에서 수도 없이 봤던 현실이었다.
“음악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습니다. 끼리끼리 뭉치죠. 음악과 정치도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입니다. 예술가가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정치, 문화와 공존하면서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예술가들은 행정가를 이해 못하고 행정가는 예술가의 사고방식을 알지 못합니다. 교집합을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대구가톨릭대 희망나눔연구센터 책임교수인 그는 학부 및 대학원생에게 극장경영과 문화행정, 예술발전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예술가들이 문화예술 및 공연기획자 등으로 진로를 선택했을 때 필요한 지식을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2년 전부터 정 박사의 제자들이 사회에 터를 잡으면서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다. 지금은 대학에서 러브콜이 잇따르지만, 어려웠던 시절 자신에게 자리를 내준 대구가톨릭대에 오래 몸담을 생각이다.
“학부나 대학원에서 성악이나 기악 등 음악만 배워서는 진로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그는 “문화예술 전공자들도 문화행정을 같이 배워 융복합인재가 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정 박사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심지어 2013년 자신의 결혼식마저 봉사의 현장으로 바꿔버렸다. 결혼식을 작은 음악회로 기획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초대했다. 예물, 예단은 생략했고, 축의금은 복지시설에 기부했다. 신혼여행은 아예 양로원에서 봉사활동으로 대신했다.
(사)작은나눔문화진흥회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소외계층의 문화예술 향유에도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능력이 생겼다면 이제는 나눌 때란 얘기죠. 저는 후배 양성에 인생을 걸었고, 같은 꿈을 꾸는 후학들이 따라올 겁니다.”
강은주 엠플러스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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