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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건은 먼지일까

입력
2015.02.1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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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에서 일할 때 온라인으로 자주 접한 블로거 중에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약한 언론인 앤드루 설리번(52)이 있다. 2000년부터 15년째 인기 블로거로 활약해온 그는 1인 미디어 실험으로 제호 저널리즘의 한계를 시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로그 사이트 더디쉬(The Dish)는 연간 20달러 이상 낸 유료 독자가 3만 명을 넘고 한달 방문객이 100만 명 이상일 만큼 인기가 높았다. 크룩스앤라이어스 등과 함께 정치 블로그로서 영향력도 상당했다. 기자도 종종 부조리한 정치에 대한 냉전(冷箭)과 같은 비평을 한 설리번의 글을 읽으며 미국 이슈에 대한 시각을 얻을 때가 많았다.

그랬던 설리번이 열흘 전 온라인 절필선언을 하고 블로그를 떠났다. 이제 새로운 일을 할 때이고, 디지털 세상에 빠져 있던 자신을 실제의 세계로 되돌려 놓고 싶다는 게 그가 밝힌 절필의 이유였다. 천천히 주의 깊게 읽으며,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블로그에 담기보다 천천히 구체화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평론가 소리를 듣는 그였다.

설리번의 절필이 어쩌면 그 동안 작업이 국면을 바꾸지 못하는 디지털의 ‘먼지’에 불과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올린 펫샵보이즈의 노래 빙보링(Being Boring)을 보고 든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그런 심정을 이해할 일이 잦아진 탓도 조금은 있다. 기자생활 22년에 사건을 주로 다루는 사회부 근무를 여섯 번째 하고 있다. 사건기자 딱지를 떼기 어렵게 됐다. 사건기자들이 싫어하는 경구가 하나 있는데, 사건이 먼지와 같다는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말이다.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탐색하라는 뜻이겠지만 뉴스를 위해 사건을 찾는 기자 입장에서 이보다 더한 야유가 없다.

사건기자에게 사건이란 사회의 불합리를 알려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작은 사건이라도 그 의미를 찾은 기자에 의해 재 사건화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제아무리 의미를 부여해도 결국은 먼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사건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게 된 것은 그 ‘먼지’가 쌓여도 국면을 바꾸는 흐름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가지 정치적 사건들이 특히 그렇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경우, 제기된 의혹들이나 부적절한 언행은 사건으로 넘겨져야 할 정도인데 정치영역에서 공방에 그친다. 한 후배기자는 ‘그럼 안대희는 왜 그만두었나’라고 물었다. 드러난 것만 가지고 따져보면, 작년 총리 후보자에서 물러난 안대희 전 대법관보다 이완구 후보자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말 지금까지 드러난 이 후보자의 의혹들이 문제가 안 되고, 사건이 되지 못한다면 변호사를 개업해 돈을 번 이는 무슨 문제가 될까.

최근 사법부가 국정원의 대선개입 논란을 희석시킨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논란을 사실무근으로 결론을 냈다. 아직 1심 판결이긴 하지만 내용 상 그 판단이 뒤집힐 것 같지 않다는 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취재기자들의 얘기다. 현 정부 초반을 달구었던 이 논란에 대해 입장을 내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대통령까지 나서 사초삭제라며 논란을 키웠던 사안인데도 말이다.

검찰총장이 옷을 벗어야 했던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에 대해선 2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했지만 역시 모두들 침묵하고 있다. 솔직히 대선개입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혼자 다 뒤집어 쓰면 그만인 지도 의심스런 사건이다. 침묵이 정치인, 권력자, 리더들의 덕목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안다. 백악관을 떠날 때 겨우 20%대 지지율을 보인 해리 트루먼이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 것은 책임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이다.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책임은 여기에서 멈춘다’는 문구를 놓아두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우리의 마이동풍 식 침묵이 뜻하는 게 무엇일지, 밝힐 수 없는 다른 이유들이 있는 건지 궁금하다. 이런 사건들이 역사의 먼지가 되고 만다면 기자들이 의미부여에 실패한 때문일까. 여섯 번째 사건기자로서 풀고 싶은 의문이다.

이태규 사회부장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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