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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상한 ‘추천도서’ 취소

입력
2015.02.1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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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아동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권정생 소년소설 ‘몽실 언니’(창비)가 출간된 것은 5공 시절인 1984년이었다. 이 소설은 그 해 ‘문공부 추천도서’에 선정되었지만 정부가 다음해에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소설 속에 인민군이 등장하는 부분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실 언니’는 전쟁의 소용돌이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복동생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몽실이의 이야기가 많은 감동을 주었기에 1990년에 드라마로도 방영되었고 2012년에는 밀리언셀러의 반열에도 올랐다.

최근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네잎클로버)나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이임하 지음ㆍ철수와영희) 등의 추천도서가 논란이 되며 선정 자체가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민원인이 문제를 제기해 언론이 이 사실을 침소봉대해 보도하고 관이 즉각 선정을 취소한 것이다.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 사례를 보자. 한국 전쟁은 20세기 한국사에서 최대의 사건이다. 당시 남북한 인구는 3,000만명 정도로 그 가운데 약 10%가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가족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피해자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는 두 쪽에 걸쳐 소략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알리고픈 학자나 출판사의 열정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에 친일파의 후손이나 이승만을 국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를 다소 ‘불편한 진실’이 실려 있는 것은 맞다. 민원인은 “6ㆍ25 남침을 해방전쟁이라고 가르치는 청소년 선정도서”라고 비판했지만 실제로 그런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 전쟁이 남침이라는 사실을 숨겼다고 비판했지만 이 책에는 머리말에서부터 ‘남침’이 언급되고 본문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심지어 한 신문에서는 “빨치산 시각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책인데도 8개월 동안이나 독서를 권장해온 것은 진보 좌파로 분류되는 김석준 교육감 성향과도 무관치 않게 비치게 마련이다. 김 교육감은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관련 인사 전원을 엄중 문책해야 한다. 교육부와 방송대 또한 그런 저자가 대학, 그것도 국립대 강단에서 학생들을 오도하도록 더 방관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담은 사설까지 실었다.

이 책이 추천도서로 선정된 것은 김석준 부산 교육감이 당선되기 전인 지난해 5월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전쟁 반대와 평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 동해와 서해에 항공모함을 배치하고 혹여 태평양을 건널지 모를 미사일을 요격할 시스템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미국, 패권 국가가 되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중국,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고 러시아, 한국,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며 군비를 확충하려는 일본. 그리고 ‘압도적인 화력만이 평화를 지켜준다’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무기를 사들이는 한국. 바로 군사력으로 평화를 지킨다는 냉전 시대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바로 지금의 한반도”라고 말한다. 이런 현실에서는 “누군가 작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조금만 비위가 거슬리면 우리는‘모두 함께 죽는’ 전쟁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 당시 실제로 뿌려진 ‘삐라’를 통해 전쟁 중에 서로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속내는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전하고자 한다.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평화를 만들어가, 한반도가 평화의 상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청소년들이 부모와 함께 읽어볼 만한 책임에 틀림없다.

책을 추천한 사서들과 저자와 출판사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선정에 관여한 사람들을 엄중문책하고 저자를 강단에서 퇴출시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무엇보다 비판 받아야 할 것은 민원인의 문제제기가 정당한지 제대로 검토해 보지도 않고 논란만을 걱정해 즉각 선정을 취소한 부산시 교육청의 행태다. 성급한 조치로 논란을 부채질한 그들이 사태 해결에 앞장서야 마땅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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