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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통령의 현존(現存)과 부재(不在)

입력
2015.02.1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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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가 청와대 회동에서 고위 당정청(黨政靑)회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왠지 썰렁하다. 잇달아 불거진 국정 난맥상의 근원인 당청 간의 불협화음을 풀자는 뜻일 텐데, 그래서 풀리겠나 하는 냉소적 반응이 많다.

고위 당정청회의는 현 정부 들어 세 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원래 주요 현안이 있을 때 수시로 열리며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참석한다. 당정청의 최고위 인사들이 만나는 만큼, 자주 열리면 꽉 막힌 불통(不通)을 해소할 첫걸음은 되지 않겠나 하는 일각의 기대가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뭔가 겉도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건 그조차도 여전히 대통령이 직접 나서겠다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지난 2일 ‘우연히’ 촬영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메모는 여당 내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얼마나 아득한 존재가 됐는지를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그날은 대통령의 63회 생일이었지만, 청와대의 기류는 결코 밝지 않았다. 1월 마지막 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30% 이하로 추락했고, 당에선 비박(非朴)계로 분류되는 유승민 후보의 원내대표 당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당일 아침 최고위원회의를 위해 들어서는 김 대표의 메모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계신 대통령의 생신날, 누가 따뜻한 생신상을 차려드렸는지 마음이 쓰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달리 보면 여당 대표가 생일 일정조차 못 챙길 정도로 대통령과 소원해진 현실에 대한 답답함의 토로였던 셈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됐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통령과 정식으로 독대를 하지 못했다. 대통령과의 거리는 비단 새누리당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각 부처 장관들조차 대통령을 가까이 보기가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직접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게 소통(疏通)이라는 생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듯 하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장관들의 대면보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통령은 “지금은 전화도 있고 이메일도 있어 대면보고보다 그냥 전화 한 통으로 빨리 하는 것이 더 편리할 때가 있다”며 배석한 장관들에게 오히려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반문했다.

사실 기능적으로만 본다면 독대나 대화만을 소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밑에서 회의하고 보고하면, 대통령이 또 다른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지시하는 것도 일종의 소통이다. 어쩌면 무질러 앉아 구구절절 나누는 담소보다 회의와 보고, 의사결정과 지시로 이어지는 소통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편리한’ 방식만으론 대통령의 뜻과 의지를 상대에게 이해시키기도, 상대방의 소신과 이견을 경청하기도 매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잘못된 소통이 빚은 재앙 중의 하나가 최근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파동이다. 문형표 장관은 부과체계 개편을 사실상 백지화 하겠다는 최초의 어처구니 없는 발표에 앞서 어떤 식으로든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정황이 매우 짙다. 하지만 지시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신조차 피력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게 분명하다. 문 장관이 기자들에게 “제 뜻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고 발뺌하듯 말한 게 그런 정황을 증명한다. 만약 장관이 대통령과 깊이 있고 충분한 대화를 가졌다면 애초에 그런 결정이 나오지 않았거나, 나왔더라도 장관이 정책결정에서 발뺌을 하는 부끄러운 작태가 빚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온당한 정책의지마저도 여론에 휘둘리는 당과 정치에 의해 만만찮은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공무원연금부터 공공ㆍ노동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성패를 가를 핵심 개혁정책들이 흔들리고 있다. 개혁은 결코 정형적인 회의나 지시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치권에 자신의 열망과 의지를 이해시키고, 구체적 거래를 통해 여야 국회의원들을 납득시켜야 비로소 가능하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정치 현장과의 대화를 꺼려 하는 한, 대통령은 존재하되 현존하지 않는 부재의 존재일 뿐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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