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는 싸움판이다. 먼지 속에 먼지가 숨는다. 승부가 관심을 독식한다. 총리 후보를 보라. 네 번 털리고도 먼지투성이다. 승승장구가 정치인을 오염한다. 청문회만 한 검증기가 없다.
“이럴 줄은 몰랐다. 3선 의원에 충남지사까지 지낸 그다.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르는 동안 털릴 먼지는 충분히 털렸으리라 여겼다. 득표 경쟁이 치열하다 보면 으레 흠집내기 싸움으로 치닫게 마련인 선거보다 더 혹독한 검증절차는 없다는 오랜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 가시밭을 네 번이나 큰 상처 없이 빠져 나온 사람이라면 특별히 꼬집어 흠잡을 곳은 없을 만했다. 그러나 국회 임명동의 절차에 따른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언론을 통해 하나하나 드러난 그의 참모습은 그러고서 어떻게 선거전을 치렀는지를 의심스럽게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게는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 굵직한 것만 들어도 박사학위 논문 표절, 우송대 석좌교수 자리와 ‘황제특강,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구시대적 언론관 등이다. (…) 이 가운데 최대한 귀를 순하게 해서 그의 해명과 인사청문회 증인ㆍ참고인 진술을 들으면 논문표절이나 ‘황제특강’, 부동산 투기 의혹은 찜찜하긴 해도 꾹 참아 넘길 만하다. (…) 어지간한 원칙과 소신이 아니고서는 쉬이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으리라는 추측,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그런 원칙과 소신에 투철한 사람은 우리사회 지도층, 특히 공직사회 고위층에서는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 그러나 병역기피 의혹은 달랐다. 첫 신체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았다가 두 차례의 재검을 거쳐 끝내 병역면제(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아 낸 이 후보자의 ‘노력’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 그의 해명은 의문을 더했다. 재검을 통해 등급이 달라진 이유로 그는 처음 신검을 받은 곳이 X선 검사장비가 없는 곳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거꾸로 첫 신검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를 갖춘 육군수도병원, 재검을 행정고시 합격 이후 부군수로 근무하던 홍성에서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 이 후보자를 통해 얻은 것은 오랜 착각의 수정이다. ‘정치인은 검증을 거쳤다’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선거는 검증절차의 하나일 수는 있지만 권투처럼 서로 치고 받는 싸움이어서 후보자 개개인의 흠집에는 유권자의 눈길이 좀처럼 머물지 않는다. 누가 몇 대를 얻어 맞느냐가 아니라 상대에 비해 얼마나 더 맞았느냐, 얼마나 충격이 큰 주먹을 더 맞았느냐가 문제다. 후보자 한 사람에 공격이 집중되는 인사청문회와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 빈 자리를 메우는 ‘얼굴 총리’라도 얼굴만큼은 매끈해야 할 텐데, 흠집투성이 얼굴을 가릴 화장술이 있기는 한 걸까.”
-총리 후보자의 민낯(한국일보 ‘황영식의 세상만사’ㆍ논설실장) ☞ 전문 보기
““40년 준비했으니 청문회쯤이야.” 가볍게 시작한 그다. 대통령의 지명 당일 “따 놓은 당상”이라며 여야 지도자들이 축하 인사부터 건넸다. 하지만 그건 청문회를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본 오판이었다. 청문회의 문을 연 순간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에겐 지옥도가 펼쳐졌다. 청문회는 40년 분칠했던 그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는 연신 백배사죄, 대오각성을 말하며 굴신(屈身)해야 했다. 악전고투 중인 이완구 후보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나는 그가 총리가 되고 말고엔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되레 당대의 의회 권력을 벌벌 떨게 만든 청문회의 경이적 ‘후보자 실체 규명 능력’-이완구의 40년 준비를 단 며칠 만에 무력화한-에 있다. 이 좋은 걸 왜 대선 주자들에겐 쓰지 않는가. 선출직이란 이름으로 부적격ㆍ무능ㆍ부패를 다 짊어지고도 큰소리치는 국회의원들에겐 왜 적용하지 않나. (…) 대권주자들도 청문회를 거치게 하자. 청문회에 안 서면 아예 출마를 못하도록 하자. 대상은 여야 후보와 여론 지지율 5% 이상 후보 정도면 될 것이다. 형식은 총리·장관 청문회처럼 하되, 날짜는 한 사람당 4~5일로 늘리자. 능력·도덕성, 서로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파헤치겠나. 국민 앞에 후보자의 실체가 이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어려울 것이다. (…) 대선 주자 청문회를 통과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총리ㆍ장관 청문회도 달라질 것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 그는 자기 같은 사람을 인사 청문회에 올릴 것이다. 총리ㆍ장관 청문회는 통과의례가 되고, 국무총리 하나 고르는 데 몇 번씩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이런 일이 현실화되면 지속 가능한 경제처럼, 지속 가능한 정치도 열릴 것이다. (…) 물론 현실로 돌아오면 암울하다. 지속 가능 경제를 말한 미국 메릴랜드대 허먼 데일리 교수는 지속 가능 경제의 최대 적으로 ‘정치적 불가능성’을 꼽았다.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모든 집단이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권주자도 청문회 하자(2월 12일자 중앙일보 ‘이정재의 시시각각’ㆍ논설위원)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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