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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내 입술 속 분홍으로 들어와'

입력
2015.02.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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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 마리 누워있다 개미떼에게 뜯긴 흰 가슴 털 사이로 가지런한 두 발이 보인다 분홍색이다 곧 무너질 색이다

그 사이 내가 내통한 곳 많다 살림살이 빼곡하다 엑스레이 속 일가의 뼈무리가 하얗게 드러난다(‘흑풍’ 중)

장정자 시인의 유고 시집 ‘내 입술 속 분홍으로 들어와’는 불성(佛性)으로 가득하다. 불성은 돌봄과 돌아봄으로 둘레를 치는 생명이다. 종교적 귀의를 벗어나 이야기 한다고 하더라도 시인이 돌보려 했던 언어들은 세상의 작은 생명들의 미미한 흔적들이다. 생명은 본래 스스로를 온전히 돌보지 못한다. 서로 둘레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 불성의 세계이며 돌봄의 자리이다.

상처가 되었지만 아물지 못했던 기미들을 시인은 함부로 시로 데려오지 않았다. 시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낡고 오래되고 점점 머무르는 것들에게 눈이 간다고 고백한다. 집착을 버리기 위해 찰나의 덧없음과 헛것들로부터 마음을 비우고자 한다. 그것이 다행히 시가 되어주면 참 고맙다. 그것은 비근한 불자적 태도와는 다른 것이다. 헛것은 때로 시가 되기도 하지만 시가 헛것을 가지고 우리 곁에 머무를 순 없기 때문이다.

이 시인의 시집에서 태동되는 생명과 연민의 순환은 아마도 그런 것들에게 피어 올리는 향 같은 것일 것이다. 문학적인 분석으로 이 시집의 결들을 논하자면 많은 겉돎이 필요할 것이다. 그건 헛것으로 보이니 필자는 단념한다.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물러나는 것이다. 좋은 시는 늘 대상으로부터 조금 물러나 있다. 둘레만 가지고도 시인은 많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성은 생명자체가 아니라 둘레다. 어떤 아름다운 은하도 우리를 돌보고 있지 않다면, 우주적인 사랑을 실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조금 읽어 보자.

짜릿한 피 고인다. 유리는 끓여도 끓지 않고 끓여도 넘치지 않는다. 유리의 절제는 나의 필독서다. 용광로 속 꿈결처럼 듣던 전설적 고수들, 뻘겋게 달궈진 심장에 수백 수천 유혹 던져 하얗게 향례에 든 후 명징한 한 자루 칼, 그 명검이 부르르 떨며 부르는 소리 듣는다 내 몸 속 기스락에서 올라오는 피비린내 비틀리는 이빨에 묻혀있던 피 냄새 닦아 준다 나는 저 손의 몇 대 손일까, 화장을 줄이고 외식 생각 곱씹는 버릇들, 오늘은 비스듬히 사과 위에 부드럽게 물린다 내 꿈은 언제나 서늘하다 혈맥을 식힌 싸늘한 광채 잭, 나이프 입 속에 접혀 고요하다. 이제 칼등을 쓸 것이다(‘잭나이프’ 중)

가파른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들은 고인 물의 소요와 고요를 맛볼 수 없이 세월을 건너간다. 고인 물에서만 노니는 물고기들은 가파른 물을 만나면 금방 숨이 차 올라 육지에 기어오르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이들을 한 물에서 어울리게 하는 이미지로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시어들을 아름다운 고기들의 속살로 표현하고자 한듯하다. 그것을 모국어로 말하면 ‘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인은 시어들을 돌보는 자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일상 속에서 말라버린 시어들의 연약한 자리를 찾는다. 속도와 이미지의 홍수로 가득한 세속의 언어로부터 시어는 숨구멍을 찾는다. 시인은 시어를 고르는 일을 하며 모국어에 숨구멍을 놓아 주는 일을 하는 자이다.

시집 ‘내 입술 속 분홍으로 들어와’에는 조용히 제 자리를 찾아가는 모국어의 숨구멍이 가득하다. 시인은 늘 조용히 합장을 하며 먼저 시어들을 배웅해온 듯 하다.

시인은 시집에서 등을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이 시인은 급성백혈병으로 몇 년 전 세상을 등졌다. 세상은 한 시인의 죽음에 무심하다. 시인이 세상의 모든 죽음 앞에서 자신의 언어를 달랬지만. 이처럼 금방 날아가 버릴 것을 알았다면, 한번 즘 고개를 돌려 보아줄 것을, 백지를 한 장 펴놓고 연필로 시인의 그윽한 미소를 한번 그려본다. 우리들의 미련함은 아직 이 마른 땅에 남아 있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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