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만류하다 거부하자 여권 몰수
국민 보호 vs 기본권 침해 여론 갈려
“여권을 잃는 것은 내 인생 자체를 부정 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직업일 뿐 아니라 많은 프리랜스 기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일을 묵과한다면 일본 언론기관에도 (영향이)미칠 수 있다. (일본 정부와)끝까지 싸우겠다. ”
12일 일본 도쿄 도심 유라쿠초(有樂町)의 외국특파원협회에서 한 일본인 사진기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스기모토 유이치(杉本祐一ㆍ58). 20년간 중동 등 분쟁지역을 취재해온 사진기자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스기모토가 협회 초청으로 이날 연단에 선 것은 최근 일본 외무성이 취재를 위해 시리아행을 계획하는 그의 집을 찾아와 출국을 만류하다 이를 거부하자 스기모토의 여권을 몰수했기 때문이다. 경찰과 동행한 외무성 여권과 직원들은 ‘여권법 19조 1항 4호’에 근거해 여권 반납명령서를 지참하고 있었다. ‘여권 당사자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정부가 반납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조항이다. 여권을 내주지 않으면 바로 구속될 처지였다.
일본 정부가 이 조항을 근거로 해외로 출국하려는 내국인의 여권을 몰수한 것은 처음이다. 최근 일본인 두 명이 이슬람국가(IS)에 인질로 붙잡혀 피살당한 사건 때문에 일본 정부는 관련 지역 출국을 최대한 자제시키고 있다. IS는 일본인 추가 테러 위협까지 한 상태다.
하지만 스기모토는 “이번 여행은 쿠르드 자치조직이 IS에게서 되찾은 시리아 북부와 터키 난민 캠프 취재가 목적으로 IS 지배지역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며 정부의 여권 몰수가 “헌법이 보장한 ‘여행의 자유’ 침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여론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 “기본권과 언론의 자유 침해”로 엇갈린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쿄 주재 외국특파원들은 대체로 일본 정부가 언론을 지나치게 통제한다는 인상을 갖고 질문을 쏟아냈다.
한 이탈리아 기자가 “뺏긴 여권을 돌려받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외무성을 상대로 싸울 생각인가”고 묻자 스기모토는 “20년간 해온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어떤 조건도 없이 여권을 돌려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기자가 “설사 난민캠프 취재를 가더라도 (IS에)붙잡힐 위험도 있다”고 지적하자 그는 자신이 가려고 하는 “난민캠프 주변에는 터키군이 주둔하고 있고 터키 치안부대가 수백 명 경계를 서고 있다”며 “IS 전투원이 침입해올 여지가 없다는 것은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스기모토는 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느냐”는 질문에 “보도가 나간 뒤 ‘역적’이라는 익명의 전화도 받았지만 그보다 ‘힘내라’ ‘도울 수 있다면 뭐든지 돕겠다’ ‘당신이야말로 사무라이다’는 격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은 저 개인의 일이면서 동시에 많은 프리랜스 기자의 문제”라며 “그런 사람들이 직업을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허용하면 어쩌면 일본 언론기관에도 (영향이)미칠 우려가 있다”며 “마지막까지 싸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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