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저널리즘 표방… 살인 사건 다루며 항소 이끌어
영향력 커질수록 윤리적 문제도… 실제 사건을 오락물처럼 다뤄
1999년 당시 전 여자친구인 한국계 미국인 이해민(19)씨를 살해한 혐의로 2000년 종신형을 선고 받은 아드난 사이에드(34)에 대해 미국 메릴랜드항소법원은 지난 7일 “사이에드에게 항소할 권리를 승인한다”고 결정했다. 메릴랜드주 검찰은 사이에드가 하교 후 볼티모어 외곽 전기제품점 주차장에서 이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며 기소했다. 검찰은 이별 후 이씨가 자신보다 더 나이 많은 남성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사이에드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이번 법원의 결정은 최근 몇 달 동안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팟캐스트(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동영상이나 음성파일) ‘시리얼’이 사이에드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 전국적 관심을 끌게 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 결정에 따라 사이에드는 다음달 16일까지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항소가 이뤄지면 공판은 6월에 재개된다. 그러나 메릴랜드주 검찰은 “사이에드가 재판 중에 변호인의 적절한 조력을 받았다”며 항소 허용에 반발했다.
‘시리얼’은 국내에서 주목을 받은 ‘뉴스타파’처럼 탐사저널리즘을 표방하는 팟케스트이지만,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해 흥미를 끌고 있다. 언론인 사라 코엔이 사이에드가 이씨를 살해한 사건을 조사하고 수사과정의 의문점들을 제기한다. 그리고 출연자들이 내레이션을 통해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낸다. 시리얼은 팟케스트 개설 후 처음 12회분을 사이에드에만 집중했다. 시리얼은 사이에드가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변호인의 도움을 받았는지 의구심을 던진다. 지난해 10월부터 코엔은 사이에드의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시리얼의 한 회 방송마다 평균 220만명이 다운받는다. 30만명이면 성공으로 간주되는 팟캐스트에서 엄청난 기록이다. 누적 다운로드량은 2,000만회를 넘는다. 뉴스ㆍ문화 웹사이트 ‘슬레이트’의 선임 편집자 데이비드 해그룬드는 “미국인들은 진지한 스토리에 열광하고 있다”고 말했다. 슬레이트는 ‘시리얼 스포일러 스페셜’이라는 시리얼에 대한 팟캐스트를 제작해 인기에 편승하고 있다.
이 같은 시리얼의 선풍적인 인기는 미국 연예산업과 언론의 변화를 보여준다. 25년 전 미국 사무실 주변을 떠다닌 잡담은 ‘누가 로라 파머(미국 TV 드라마 트윈픽스의 살인사건 피해자)를 죽였는가’이었다면, 지금은 ‘사이에드가 이해민을 죽였는가’이다. 트윈픽스와 달리 시리얼은 허구가 아닌 사실을 다루지만 인기는 비슷하다.
시리얼의 성공 이유에 대해 청취자들은 프로그램의 핵심인 사이에드의 진범 여부만큼이나 의견이 갈리고 있다. 팟캐스트 특성상 수용자들이 듣고 싶을 때 청취가 가능하다. 여기에 사이에드의 무죄를 옹호하는 지지자들은 블로그에 글을 직접 남기고, 유투브에 패러디 동영상을 생산하며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시리얼을 계기로 팟캐스트가 본격적으로 광고주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점도 눈에 띈다. 시리얼은 중소 이메일마케팅 업체에서 시작해 이제는 아마존, 뉴욕타임스 등 대기업으로 광고주를 넓혀가고 있다.
시리얼은 지금까지 팟캐스트가 시사나 신변잡기를 전하는 것에서 벗어나 기성 언론과 사법체계에 대한 보완자와 감시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또 시리얼은 미래 팟캐스트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리얼의 인기가 높아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윤리적 문제도 커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적한다. 시리얼은 실제 살인사건 가해자와 피해자에 관한 것이고 사이에드의 무죄 가능성을 다룬다.
하지만 피해자인 이씨 가족들을 비롯한 일부 계층은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씨 가족들은 “우리에게는 진짜 삶이지만 청취자들은 그냥 범죄 드라마로 여기는 듯하다”며 “피해자 가족이 겪은 처절한 아픔을 오락물처럼 다뤄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실제 범인이 누구인지를 세련된 스토리텔링으로 쫓으면서 시리얼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언론 윤리와 관련 수많은 문제들을 남기고 있도, 특히 민감한 사안에 있어 미디어의 역할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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