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위상이 달라졌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작품이 나오면서 독립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시각도 한층 성숙해졌다. '워낭소리'(2008) '똥파리'(2008)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등이 저예산 연출로 흥행의 기쁨을 맛봤다.
히트한 독립영화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공통점이 있다. 공감 코드다. '똥파리'는 남자 친구들끼리 주고 받을만한 걸걸한 욕설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가족과의 이별을 담았다. 노부부 앞에서 자식들이 싸우는 장면은 평소 부모 앞에선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는 거울이 됐다.
독립영화 연출 특성상 청춘의 현실을 주제로 한 작품도 여럿 나왔다. '청춘'을 키워드로 한 독립영화 중에는 흥행 면에서 다소 아쉬운 결실을 맺은 작품도 많다. 하지만 공감도만큼은 tvN 드라마 '미생' 못지않다. 다가오는 주말에 보면 좋을 지나간 청춘영화 5편을 소개한다.
1.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외로운 청춘…2013년 영화 '10분'
'미생' 신드롬의 중심엔 20대 새내기 직장인이 있었다. 신입사원 4인방 각각의 모습이 유독 큰 공감을 불러왔기 때문. 러브라인 하나 없는 시나리오도 현실감을 더했다.
독립영화 '10분'은 보다 더 사실적이고 세밀한 직장 묘사가 돋보인다. 사무실은 비좁고 한 대있는 복사기는 툭하면 고장 나기 일쑤다. 가난한 인턴사원 강호찬(백종환 분)은 회사 등산모임 때문에 등산복을 구입하면서 한참을 망설인다. 방송 PD의 꿈을 포기하고 직장 일에 매진하지만 아버지는 "너는 너만 생각하냐?"는 모진 말만 내뱉는다.
가장 큰 공감 포인트는 계약직과 정규직의 괴리이다. 호찬은 정규직 전환 첫날 한마디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낙하산 신입사원에게 자리를 뺏긴다. 이후 계약직 인턴생활을 이어가지만, 불평 한마디 내뱉지 못한다. 직장에서도, 집 안에서도 토해내지 못하는 청춘의 감정을 관객은 풀 죽은 호찬의 표정에서 읽는다.
2. '1인 가구’ 모여라…2005년 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
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는 원룸에 사는 시내(조시내 분)가 새로운 가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시내가 외간 남자 동규(최시형 분)를 집 안에 들이는 설정이 다소 어색하게 비칠 수 있으나 꾸밈없는 미장센, 소박한 등장인물 설정으로 리얼리티를 살렸다.
감독은 가족을 혈연에만 국한하지 않고 확장된 의미로 적용했다. 여기에 통상 심오하게 다뤄졌던 가족문제를 경쾌하게 그려내 해석의 부담을 줄였다. 1인 가구 세대의 현실과 대안가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3. '하고 싶은 것을 해라'…2014년 영화 '족구왕'
보편적인 코미디 스포츠 영화인 듯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보면 해학 속에 뼈아픈 현실이 보인다.
영화 '족구왕'의 주인공 홍만섭(안재홍 분)은 막 군대에서 제대한 복학생이다. 대학에 돌아오니 과는 비전이 없고 딱히 잘하는 일도 없어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라는 소리나 듣는다.
하지만 만섭은 조언을 무시하고 학교에 족구장을 건립하려고 나선다. 그 과정에서 그는 짝사랑하는 안나에게 "여자들이 족구하는 복학생 제일 싫어하는 거 몰라요?"라는 핀잔을 듣는다. 침묵하는 듯했던 만섭은 조용히 답한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족구왕'은 청춘에게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오롯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것을 조언한다. 이 외에도 학자금 대출, 아르바이트, 취업, 연애 등 소소한 장면마다 20대의 고민들을 녹여내 공감을 끌어냈다. 해당 작품은 누적관객 45,000명을 돌파하며 2014년 독립영화 중 최고 흥행작으로 부상했다.
4. 2030세대의 현실적인 로맨스…2013년 영화 '청춘정담'
20대와 30대 사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20대 커플은 당장 눈앞에 닥친 고민에 빠진다면 30대 커플은 보다 냉정한 현실을 바라본다.
영화 '청춘정담' 속 대학생 윤성(고경표 분)은 군대 입대를 앞두고 총각 딱지를 떼고 싶어한다. 한편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29살 백두(송삼동 분)는 임신한 여자친구와의 결혼 문제로 고민에 빠진다. 20대 초중반 관객은 작품을 통해 미래의 사랑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30대 관객은 20대 시절 풋풋한 사랑을 추억하는 계기가 된다.
극중 20대 후반 커플은 3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의 현실을 포장 없이 묘사했다. 특히 배우 송삼동은 평범한 외모와 수더분한 말투로 찌질한 남자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5. 희망 없는 하류청춘…2004년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
사회 부적응자 청춘들의 시련을 암담하게 그렸다. 씩씩하게 이겨내는 모습이 아닌, 무기력한 하류청춘의 모습을 조명했다. 대부분의 장면을 흑백 처리해 희망 없는 주인공의 내면을 극대화했다. 여기에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해 다소 거친 화면으로 극의 분위기를 살렸다. 여자 주인공 재경(유재경 분)이 "카메라 꺼. 그럼 말할게"라고 한 뒤 암전되는 부분이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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