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대학의 연구 분위기를 해치는 주범이며, 학생들의 등록금을 올리는 요인이자, 교수들 간의 갈등을 부르는 ‘독버섯’은?
90년대 학번인 또래 지인들이 가장 많이 떠올린 답은 술과 학내 시위였다. 성추행ㆍ성희롱을 지목한 소수 의견도 있었으나 등록금 인상 요인과의 연관성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해 모두 오답 처리. ‘대학을 정치판으로 변질시킨 것’이라는 결정적인 힌트를 줬지만 퀴즈를 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답은 총장 직선제. 생뚱맞다며 고개를 갸웃거린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대학 구조조정이 화두였던 2011년 무렵 교육부의 생각은 그랬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91년 국공립대에 총장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연구에 전념해야 할 교수들이 파벌을 만들어 싸움을 벌인다. 직선제로 선출된 총장은 측근들을 주요 보직에 앉혀 교수들간의 줄 세우기가 성행한다. 총장 선거 출마자들이 교수와 교직원들의 수당 인상, 처우 개선 등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이는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대학에서 존경 받는 학자들 대신 정치꾼 교수들이 득세한다. 미국과 유럽의 명문대학들은 교수들이 총장을 직접 뽑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총장 직선제가 대학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악의 축’이란 논리엔 감히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웠고, 총장 선출 방식만 바뀌면 대학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당시 교육부는 성전(聖戰)을 치르듯 거침없었다. 총장 직선제는 당시 법으로도 보장돼 있었으나 교육부에겐 ‘전가의 보도’인 대학 평가가 있었다. 방법도 노골적이었다.
2011년 전국 교육대학 평가에서 하위 15%에 속한 부실 대학은 2곳이었는데 교육부는 이 중 총장 직선제를 스스로 폐지한 A교대를 구제하고, 직선제를 고수한 B교대를 구조개혁 중점추진 대학으로 지정했다. 신입생 모집정원 감축, 정부의 재정지원 중단 등 강도 높은 제재를 받게 될 위기에 처하자 결국 B교대도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구조조정을 면했다. 그리고 그 해 말 전국 교대 10곳은 모두 총장 선출 방식을 간선제로 바꿨다. 형식적으론 교수들의 투표를 통한 자율 결정이었으나 사실상의 ‘손목 비틀기’였다.
정부가 입맛에 맞는 총장을 세워 국공립대를 길들이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교육부 공무원들은 오히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일이 가능하겠냐”고 받아 쳤다. 혐의는 충분했으나 총장 직선제로 인한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공무원들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보자는 게 당시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이후 4년이 흘렀고, 전국 39개 국공립대학은 모두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다. 대학의 상황은 나아졌을까? 적어도 대학의 정치화는 개선됐을까?
최근 국립 한국체육대의 총장 임명 소식을 듣고 뒤통수가 얼얼했다. 한국체대가 4차례에 걸쳐 2배수로 추천한 교수, 관료 등 8명의 후보는 모두 교육부가 퇴짜 놓았고, 결국 총장으로 임용된 인물은 경북 구미 출신의 ‘친박’ 정치인 김성조 전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대학의 정치화를 막겠다더니 아예 총장 자리를 정치인에게 내준 꼴이었다.
대학의 연구 분위기를 걱정했던 공무원들의 말을 순진하게 믿은 어리석음이 부끄러웠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당시 총장 직선제 폐지 작업에 앞장섰던 한 교육부 고위공무원은 간선제로 바뀐 국공립대 2곳의 총장 공모에 나서 물의를 빚었다. 그는 당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총장 후보에서 사퇴했지만 결국 한 지방대 총장으로 임명돼 재직 중이다.
적법한 절차로 추천된 총장 후보가 최근 교육부에 의해 거부당한 국립대는 경북대, 한국방송통신대, 공주대 등 한두 곳이 아니다. 총장 후보자들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문제 삼았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지만 교육부는 예나 지금이나 “대학의 자율적인 총장 선출 과정에 정부가 개입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총장 임용 제청 거부도 교육부의 고유권한이라 한다면 딱히 할말은 없다. 그런데 4년 전 교육부 공무원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거리낌 없이 벌어지는 지금은 어떤 시대라고 해야 하나.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manbo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