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세 인상과 연말정산 사태로 촉발된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보장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 나랏돈이 필요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무상급식에 무상보육을 더한 상황에서는 더 많은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치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세금을 늘리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대통령은 증세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한다.
국민들은 세금이 늘어야 하고 이미 늘었다는 걸 알고 있다. 사회보장 혜택이 늘었으니 그 재원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부는 증세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난해 있었던 담뱃세 인상과 국민들이 경험한 연말은 무엇일까? 증세에 관한 한 정부와 대통령의 말은 국민들의 인식과 어긋나고 서로의 말은 겉돌기만 한다.
국민들이 정부에게 묻는 것은 증세의 대상과 방법이다. 계속 가계에 대한 세금을 늘릴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지난 9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0년 이래 가계의 세금 부담 증가 속도가 소득의 2배에 이르고, 2014년 가계 조세 지출액은 전년도에 비해 5.9% 늘었다. 반면에 법인세는 2012년 이래 계속 줄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계의 세금 부담이 느는 것이 증세가 아니라면 ‘증세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란 정부의 얘기는 ‘기업의 법인세 부담이 늘지 않았고 앞으로도 늘리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결국 증세 논의에서 국민과 정부가 소통할 수 없는 까닭은 ‘증세’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국민과 정부가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다르다 보니 증세 논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렇게 정부가 증세 논의를 회피하는 것은 법인세를 늘릴 경우 기업의 경제 활동이 위축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한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이런 정부의 염려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국가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국민이고, 경제활동만큼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도 중요하다. 이점 때문에 우리 헌법은 정부에게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조세 제도는 소득 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국민들은 이점을 문제 삼고 조세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논어’ 자로편을 보면, 자로가 공자에게 정치를 한다면 무엇부터 할 것이냐고 묻자 공자는 가장 먼저 이름을 바로 잡겠다(正名)고 대답한다. 공자는 그 이유로서,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백성들이 몸 둘 곳조차 없게 된다고 설명한다. 춘추시대 중국의 정명(正名)의 의미가 지금과 같진 않겠지만,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이 정치의 시작점이란 것은 2015년의 대한민국과 다르지 않다.
증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 정명(正名)을 한 후 증세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추상적인 증세 논의는 국민의 부담이 늘 수 있다는 추상적 염려에 부딪치게 된다. 일반 가계는 이미 세금이 늘 만큼 늘었으니 근로소득세 등 가계 소득의 증세에 대한 부분은 논의에서 일단 제외해야 한다. 이제는 증세 논의를 법인세에 관한 것으로 한정 짓고, 기업의 적정한 세금 부담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즉 어느 범주의 기업에게 어느 정도까지 세금을 더 부과할 것인지를 드러내놓고 얘기해야 한다. 이것이 증세 논의에서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 비용을 경제 활동 주체 중 어느 한 쪽이 과도하게 부담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가계와 기업 모두 한 국가의 경제 활동의 주체인 만큼 그들 사이에 세금 부담이 공평할 것이 요구될 따름이다. 증세 논의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이 점에서 기업의 법인세 개혁 논의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업이라는 큰 범주 속에는 경제 활동의 기반과 조세 제도의 혜택을 받는 폭이 다른 집단이 존재한다. 지금의 조세 제도 아래에서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면세 혜택을 누리고, 그로 인해 대기업에 대한 실효세율은 외국에 비해 낮다. 따라서 정부는 법인세 개혁 과정에서도 형평을 유지하고 중소기업의 경제 활동의 잠재력이 위축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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