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시간’은 현재 상영중인 다르덴 형제의 신작 영화이다. 감독의 명성과는 달리 100개 미만의 극장에서 소규모로 개봉했고, 그럼에도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관객들이 찾고 있다는 이 영화를 꼭 보시길 권한다. 그러므로 줄거리를 세세하게 소개하지는 않을 테지만 설령 배경을 안다고 해도 관람에는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이야기의 전개 외에도 보아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내일을 위한 시간’의 원제는 ‘두 번의 낮, 한 번의 밤’이다. 우울증으로 얼마간 휴직을 했던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는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한다. 복직을 앞둔 그녀는 동료들의 투표 결과로 급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남은 16명의 직원들이 그의 복직과 1,000유로의 보너스 중에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반장의 압력이 부당하다는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져 회사는 재투표를 결정했고, 그는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 즉 1박 2일의 주말 동안 동료들을 설득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카메라의 시선은 산드라가 동료들을 한 명씩 찾아가 만나고, 설득하는 과정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대단한 극적 구성과 전환이 없는데도 숨을 죽이게 된다. 산드라와 남편의 분투와 동료들의 선택은 애초부터 어이가 없는 것이지만 직원들은 이 어불성설의 선거‘판’ 자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주 5일을 공장에서 일하고 자녀 학비에 생활고 때문에 주말에도 각종 알바를 하는 그들에게 원화로 125만원 정도의 보너스는 꼭 필요한 돈이다.
그런데 여기서 설득하는 자와 설득의 대상으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것은 사실 반장과 직원들이지 이 기묘한 양자택일을 시행한 실질적인 결정권자인 사장은 이 판의 밖에서 철저한 관망자가 된다. 투표라는 ‘민주적’으로 보이는 형식은 너무 쉽게 야만이 된다. 여기서는 정부가, 기관이, 혹은 회사가 벌이는 많은 싸움에 약자들만이 대신 사분오열 서로를 비난하며 다치고 피를 흘렸던 숱한 사례들이 떠오른다.
산드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틀간 요동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심지어 치료제인 항우울제를 다량 복용하며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한다(이렇게 극적인 국면을 알아도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음). 주목할 것 중 하나는 그녀가(혹은 감독들이) ‘판’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애써 유지한 만남의 과정이다. 그녀는 동정을 구걸하지 않고 거대한 연대의 구호를 내세우지도 않으며, 섣불리 가해자와 피해자의 선 긋기를 하지도 않고 동료들에게 억지로 우정을 요구하지도 않으려 한다. 종국에 패배했지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어쩌면 이것이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내일은 정말 가능할까?
회의적이 되기 쉬운 이 물음에 다행히도 절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는 지난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고공농성을 무려 309일간 이어갔던 그가 35 미터 높이의 크레인에서 세상과 소통하며 보여주었던 면모들은 비단 해고와 복직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에게 그의 태도와 용기가 내일을 위한 시간이었다.
2015년 오늘 또 세 명의 노동자가 굴뚝 위에 있다. 이들은 또 얼마큼의 시간을 보내야 할까. 쌍용차는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자살이나 질환 등으로 숨진 노동자와 가족의 수가 무려 26명에 이른다. 소수가 남아 8년째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해고자들 그리고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사업장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하다못해 내가 속한 미술계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모두를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만 바라보면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사람은 오늘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 희망이 있다면 안 죽거든요.” 얼마 전 김진숙 지도위원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쓴 글의 한 문장이다. 영화에서는 산드라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러 다니면서 무언가 아주 조금씩 바뀌어간다. 그가 변하듯 동료들도 변한다. 더딜지라도 이 만남의 작용 밖에는 희망이 없다.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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