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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름으로… 전쟁의 참혹함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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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름으로… 전쟁의 참혹함 고발

입력
2015.02.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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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민중미술 선구자 케테 콜비츠展

80년대 국내 민중판화에 영향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조각상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조각상 '피에타'.

두려움에 잠식된 얼굴로 절규하는 어미, 그리고 죽어서 축 늘어진 아이…. 전시장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서늘한 슬픔이다.

서울 노원구 동일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케테 콜비츠’는 비탄의 아리아다. 독일 태생의 민중미술 선구자 케테 콜비츠(1867~1945)는 1980년대 한국 민중판화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판화를 사회참여적 수단으로 삼아 가난과 질병, 전쟁과 죽음에 시름하는 사람들을 담은 강렬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와 공동주최한 이번 전시는 초기부터 말년까지의 주요작 56점이 선보이는데 모두 일본 사키마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것으로 죽음에 대한 애도가 두드러진다.

전시는 크게 콜비츠 작품에 중대한 국면변화가 이뤄진 1914년 1차 세계대전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둘째 아들 페터는 1914년 10월 20일 전장에 나간 지 불과 20여일 만에 한 통의 전사통지서로 돌아온다. 고작 열여덟, 엄마를 닮아 예술가적 성향이 다분했던 어린 아들을 전쟁의 희생양으로 내어주고 나서 콜비츠는 전쟁의 참혹함과 비참함을 다룬 작품들에 집중했다.

콜비츠 대표작인 전쟁 연작 중 '어머니들'. 어머니들이 공포에 질린 아이들을 품은 모습으로 전쟁의 잔혹함에 대응하는 모성애를 표현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콜비츠 대표작인 전쟁 연작 중 '어머니들'. 어머니들이 공포에 질린 아이들을 품은 모습으로 전쟁의 잔혹함에 대응하는 모성애를 표현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콜비츠는 동프로이센의 수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의 중산층 가정에서 다섯째 딸로 태어났으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비참한 삶에 주목했다. 초창기 주로 노동자ㆍ농민ㆍ빈민 계층의 고된 생활과 질병을 주요 소재로 다뤘다. 사회주의에 큰 관심을 보인 오빠와 노동자집단거주지에서 의료활동을 하던 남편의 영향이 컸다. 초기 에칭, 석판 작업들 중 눈 여겨 볼 것은 콜비츠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 ‘농민 전쟁’(1901~1908) 연작이다.

1차 대전 이후에는 초상의 규모가 커지고 형상이 단순해졌다. 에칭과 석판에서 목판으로 전향한 뒤 첫 작업인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추모’(1919~20)는 세부 묘사를 생략하고 주제만 부각해 시공간적 제약 없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곱편의 ‘전쟁’(1921~1922) 연작은 절제된 표현의 목판화 기법이 주는 흑백의 선명한 대비와 풍부한 음영으로 주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내 콜비츠의 백미로 꼽힌다. 콜비츠는 자화상의 대가로도 꼽힌다. 먼 곳을 응시하는 듯 초점 풀린 눈과 거칠한 피부의 여자는 건조한 표정이지만 어딘가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다.

콜비츠는 전쟁 희생자에 포커스를 맞춰 전쟁의 비인간성을 강력히 경고했다. 흑백의 단순하고 힘찬 형태들은 굳이 드러내놓고 투쟁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로 하여금 꿈틀대는 무언가를 자극하고 끌어낸다. 그것은 선동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연민에 가깝다. 투쟁의 정치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콜비츠 작품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릎에 아들의 주검을 올려놓고 슬퍼하는 어머니를 표현한 조각 피에타(1937~1938)는 세월호 참사로 어린 아들 딸을 잃고 슬픔에 침잠한 우리에게 한층 의미심장하다. 전시작품 중 유일한 조각 작품이다. 피에타상의 어머니는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케테 콜비츠 자신이자, 세월호 참사로 또는 어떤 다른 이유로든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화신이다. 북서울미술관 김혜진 큐레이터는 “역사적 사건과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으로 승화시킨 콜비츠의 예술혼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어린이 겨울방학 교실 등 어린이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4월19일까지. (02)2124-5269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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