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인문저술가 니콜라우스 뉘첼
'전쟁과 평화, 그리고 나' 주제로
국내 청소년들과 대화
“독일이 전범 역사를 반성하고 후대에 꾸준히 교육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최근 샤를리 에브도(무함마드 만평을 실은 프랑스 잡지) 테러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개인이나 국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독일 인문저술가 니콜라우스 뉘첼이 전쟁이라는 주제를 놓고 한국 고등학생들과 만났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주최하는 제2회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청소년 부문 대상에 저서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서해문집)가 선정돼 방한한 뉘첼은 11일 서교동 인문카페 창비에서 부산 청소년 인문학 공간 인디고서원 학생 5명과 ‘전쟁과 평화, 그리고 나’를 주제로 진중한 대화를 나눴다.
학생들 중 일부는 작가와 구면이다. 인문교양서 저자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2009년 뉘첼의 독일 자택을 찾아갔었다. 통신원, 통역사 등을 지내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뉘첼의 책 ‘다리를…’은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를 위해 온 집안이 매년 기념 파티를 했던 저자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1차대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일 정부가 철저히 반성할 수 있는 원인에 대해 질문한 김기환(17) 학생에게 “실상이 다르다”는 뉘첼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한국에선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독일의 역사 교육이 좀 과장되게 알려진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의 청소년들도 그런 주제를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영화에선 아이들이 ‘또 유대인 수용소 견학이냐’며 야유하는 장면이 나오죠. 주입식 교육보다는 가족들의 개인적인 얘기를 통해 전쟁과의 접점을 찾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나치에 동조했다면 1차대전이 자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요.”
김은비(17) 학생은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이민자들에 적대적인 극우 정당이 힘을 얻는 현실을 지적하며 청소년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물었다. 뉘첼은 이민자 테러 발발에는 소외, 증오, 무기의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답했다. “사회에 자신의 자리가 있으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 인간은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립니다. 무의미한 삶은 증오로 이어지고 여기에 무기까지 더해지면 샤를리 에브도 같은 사건이 발생하죠. 차별에 반대하는 기준이 궁금한가요? 내가 차별받는 입장이 되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박진영(18) 학생은 “교육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느냐”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뉘첼은 “회의적”이라고 답하면서도 희망의 여지를 남겼다. “내가 여러분 나이였을 때 원자폭탄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원자폭탄은 없어지지 않았죠. 전쟁은 군사, 정치 등이 개입된 다차원적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과거와의 차이입니다. 제 나이의 독일인 중에는 집 안에 프랑스와 전쟁한 사람이 반드시 한 명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아들이나 그 친구가 프랑스인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과거의 일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 것, 이게 교육의 효과가 아닐까 합니다.”
뉘첼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회의하라는 것이었다. “배우고 아는 것이라도 늘 다시 물으십시오. 그리고 상상하세요. 다르게 볼 수는 없을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볼 수는 없을까 하고요. 많이 비판하고 회의하는 사람만이 내가 발 붙이고 있는 세계에 더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재차 질문하세요. 오늘 제가 한 말에 대해서도요.”
뉘첼은 14일 성동구 한양대 인문과학대에서 열리는‘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시상식에 참석해 ‘혐오의 정치: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속의 그들과 우리’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 뒤 15일 출국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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