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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걸린 문제… 본업 내팽개친 채 300쪽 보고서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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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걸린 문제… 본업 내팽개친 채 300쪽 보고서 진땀"

입력
2015.02.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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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서 인원 차출·합숙도 예사, 연말부터 3월까지 일반 업무 마비

평가위원 전문성 부족·고무줄 잣대, 주먹구구식 실사로 악순환 되풀이

“작년 연말 3주간 합숙을 했습니다. 최근엔 거의 매일 야근이고요. 300페이지 보고서를 만들려면 3월까지는 개인 시간은 없다고 봐야죠. 우리 팀 손에 조직 전체의 성과급이 달려있으니.”

A 공공기관 경영평가관리 팀에 소속된 직원의 푸념이다. 정부가 매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간소화, 채점기준 합리화 및 번복 자제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재무상태, 임금, 복리후생비용 등 경영 측면뿐 아니라 정부의 주요사업 추진실적까지 방대한 내용을 빠짐없이 담으려면 연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공기업의 일반 업무는 마비될 지경이다.

보고서 작성부터 난제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채우려면 전담 팀이 있더라도 각 실무부서 인원을 추가로 차출해야 한다. 지난해 등급이 두 계단 내려가 비상이 걸린 B 공공기관은 아예 5개 평가항목과 관련 있는 실무책임자들을 총동원했다. 각 부서에서 유능한 인력들이 다 빠져나가면서 올해 사업 기획, 시장분석 등 고유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고 지연됐다. B 공공기관 관계자는 “일부 담당자는 보고서 작성을 위해 제 돈 내고 컨설팅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외부업체에 돈을 주고 발표자료를 꾸미는 기관도 있다.

어떻게든 좋은 점수를 받으려는 공기업 입장에서 보고서 양으로 승부하는 건 관행처럼 굳어졌다. C 공공기관 관계자는 “모든 문서를 컬러로 인쇄하고 글자 크기나 자간 등 사소한 형식까지 트집잡던 예전보단 그나마 나아졌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매년 일관성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편람이다. 한해 동안 평가의 잣대인 편람은 평가 전년도 12월에 발표되는데, 중간에 여러 번 수정되면서 혼란을 부추긴다. 아울러 정량평가 산식조차 공개하지 않아 기관들 사이에선 정부의 일방통행 식 추진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D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난해엔 경영공시 부분을 예고 없이 정성평가에서 정량평가로 바꾸겠다고 밝혀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라며 “수시로 달라지는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려면 기관마다 전담 팀을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정권이 바뀌거나 사회 분위기에 따라 평가의 주안점이 달라지는 게 공공기관 입장에선 곤혹스럽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안전이 화두가 되면서 1년 만에 4계단이나 하락한 선박안전기술공단(E등급)이나 흑자경영을 했지만 비정규직 인건비 증가를 이유로 기관장 해임건의 판정을 받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D등급) 등이 대표적이다.

보고서 제출 뒤 이어지는 실사 과정은 평가위원들의 전문성 미비가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리더십 및 책임경영 ▦경영효율성 향상 ▦주요사업 ▦부채관리 및 재무건전성 ▦노사복리후생 ▦평가지표 설계 등 각 평가항목마다 복잡한 기준(지표)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평가에 적용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평가위원들의 평가 분야가 해마다 바뀌는 일이 허다하다. 실제 지난해와 이전 연도(2009~2012년) 평가에 모두 참여한 경험이 있는 67명 중 31명(46.2%)이 전과 다른 항목을 평가했다. 평가위원 직업별로는 교수와 연구원 집단의 각 56.8%, 60%가 1회 이상 평가항목이 바뀌었다. 예컨대 2011년부터 3년간 평가에 참여한 서울소재 사립대 교수는 첫해 경영효율, 이듬해 리더십, 마지막 해에 주요사업 등의 평가를 맡았다. 당연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담당자들은 대부분 이해도가 낮은 평가위원들을 상대하는 일을 평가 업무의 주요 애로사항으로 꼽는다. E 공공기관 관계자는 “평가위원들이 실사 과정에서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실사 시간이 너무 짧다는 점도 공공기관들의 불만이다. 공공기관 직원들이 평가위원들을 별도로 찾아가 설명을 보충하던 방식이 지난해부터 금지되면서 기관에 대해 제대로 알릴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F 공공기관 관계자는 “사전 접촉이 차단된 상황에서 반나절 정도의 실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라며 “규모가 적은 기관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아 불리한 평가를 받기 일쑤”라고 말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아무리 전문가라도 짧은 실사 기간에 수천, 수만 명을 거느린 회사를 다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보고서로 판단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공공기관들의 보고서 작성 부담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오락가락 평가기준, 형식과 양으로 승부하는 보고서, 무성의한 실사 등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문제점이 좀체 개선되지 않으면서, 공공기관들 사이에선 정부가 평가를 공공기관 길들이기에 악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지난해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노사합의 여부를 평가에 반영한 게 대표적이다. 실제 지난해 평가 대상 중 노사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18개 기관 중 14곳(80%)의 등급이 하락했다. “정부가 성과급을 볼모로 공공기관을 옥죄면서 노사는 사라지고 정부만 있는 것 같다”는 게 공공기관 직원들의 불평이다.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정세미인턴기자(이화여대 기독교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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