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덕일의 천고사설] 혜성과 정치

입력
2015.02.10 20:00
0 0

혜성을 천구(天狗)라고도 부르고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유성을 별똥별이라고도 한다. 하늘의 개란 뜻인데 천구가 나타나면 재해(災害)의 징조로 여겼다. 바닷물이 붉게 물들고 물고기가 떠오르면 천구성(天狗星)이 바다에 떨어졌기 때문으로 여겼다. 천구성이 떨어지자 비같이 붉은 바닷물이 솟아올랐다는 정종실록의 기록 등이 이런 인식을 말해준다. 그래서 혜성이 나타나면 재해의 징조로 여겨서 임금에게 몸을 닦고 반성하는 수성(修省)을 요구했다. 임금의 정사 잘못 때문에 하늘이 견책의 의미로 혜성을 내려 보냈으니 정사의 잘못을 반성하고,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 같은 행위를 하라는 것이었다. 통감속편절요(通鑑續編絶要)의 ‘송 태조 본기(宋太祖紀)’에 “혜성이 동정(東井)에 나타나자 황제(皇帝)가 정전(正殿)을 피해서 감선(減膳)하고 8월 병진에 큰 대사면을 베푸니 이날 저녁에 혜성이 소멸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동정(東井)이란 이십팔수(宿) 중에 남방주작(南方朱雀)에 해당하는 별자리로서 정수(井宿)를 뜻한다. 세조 1년(1455) 9월 16일 경연에서 위의 통감속편절요 ‘송 태조 본기’의 혜성 관련 부분을 강독했다. 더 이상 사료가 없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경연 강독관이 의도적으로 이 대목을 채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는 수양대군, 즉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즉위한 지 두어 달 남짓 지났을 때였다. 그래서 세조에게 하늘의 견책을 두려워하면서 정사에 임해야 한다는 간접적 메시지로 이 대목을 강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세조는 “역사서는 믿을만한 책이지만 이 부분을 기록한 자는 지나치다. 천도(天道)가 과연 이처럼 그 반응이 빠를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임금에게 경서(經書)를 강독하는 시독관(侍讀官) 홍응(洪應)이 “이는 몸을 닦고 반성하면 재변이 소멸하는 이치를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세조가 다시 “반성하는 생각을 한다고 어찌 재변이 소멸할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표하자 홍응은 “하늘과 사람은 같은 이치여서 감동하면 통하는 신묘함을 갖고 있는데, 이는 속일 수 없습니다”라면서 “이 이치는 매우 밝은 것이어서 임금의 언행에 귀감이 되어 빛나는 것입니다”라고 다시 설명했다. 그러나 세조는 “이는 후세의 임금을 경계하는 말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믿지 않았다.

시독관 홍응이 말한 “하늘과 사람은 같은 이치여서 감동하면 통하는 신묘함을 갖고 있다”는 말은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에 바탕을 둔 것이다. 서기 전 2세기 때 인물인 한(漢)나라 동중서(董仲舒ㆍ서기전 179~서기전 104)가 체계화한 유학이론이다. 하늘은 한 사람에게 천명(天命)을 내려서 군주로 삼고, 자신을 대신해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는데, 군주가 정치를 잘 못하면 재변을 내려서 견책의 뜻을 보인다는 이론이다. 견책의 종류 중의 하나가 혜성이 나타나는 것으로서 재변의 조짐이기 때문에 국왕은 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인감응설은 왕조 국가에서 국왕의 전횡을 방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좋은 이론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지기는 천인감응설도 마찬가지였다.

성종 9년(1478) 흙비(土雨)가 내리자 조정에 진출한 사림 계열은 임금에게 하늘의 견책으로 여기고 수성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러자 도승지 임사홍이 “예로부터 천지의 재변은 운수(運數)에 있으니 운성(隕星ㆍ별똥)도 역시 운수이며 지금의 흙비도 때의 운수가 마침 그렇게 된 것이지 어찌 재변이겠습니까?”라면서 하늘의 경고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양관(兩館ㆍ홍문관 사간원)의 관원 20여명이 “임사홍이 말한 바는 모두 옛 간신의 말”이라고 비난해 정국에 큰 파문이 일었다. 성종은 자신을 옹호한 임사홍의 편이었지만 사림 계열의 강한 항의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임사홍을 유배형에 처하고 말았다. 송나라의 개혁정치가 왕안석(王安石)도 임사홍처럼 “천상(天象)의 변화는 그 자체의 법칙이 있는 것이지 인간사의 길흉과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면서 천인감응설을 ‘거짓되고 망령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사홍과 왕안석은 모두 천인감응설을 비판했지만 배경은 완전히 달랐다. 성종 때의 훈구파 임사홍은 사림 계열의 개혁 요구를 배척하기 위한 수단으로 천인감응설을 비판한 반면 송나라의 왕안석은 자신이 주도하는 신법당(新法黨)의 개혁에 반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법당(舊法黨)에서 혜성을 끌어들였다고 여겨서 비판했던 것이다. 임사홍이 훈구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천인감응설을 비판했다면 왕안석은 수구파인 구법당의 기득권 옹호를 반박하기 위해 이를 비판했던 것이다.

엊그제 전국 각지에서 혜성을 봤다는 목격담이 속출하고 있다. 21세기에 천인감응설을 주장하고 싶지도 않지만 21세기에 부자감세, 서민증세 등의 그릇된 정책을 고집하는 집권세력에게 내린 하늘의 경고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