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이산가족 상봉 사실상 무산 이어 한미 연합 훈련 싸고 연일 신경전
남북이 관계개선을 위한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사실상 무산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겨냥한 북한의 무력도발이 전년보다 2주 앞서 진행되는 등 연초부터 기싸움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말 정부의 남북대화 전격 제안,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신년사의 정상회담 화답으로 일었던 훈풍이 40여일 만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10일도 남북 간 신경전은 계속됐다.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출발점은 남조선 당국이 동족대결 의식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하는 것”이라며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주장했다. 이어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의 중대제안에 대해 ‘전제조건’이니 뭐니 시비하며 대화부터 열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 없는 수작”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또 5ㆍ24 조치 해제와 관련해서도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떤 대화나 접촉, 교류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도 원칙론으로 맞섰다. 통일부 당국자는 “부당한 전제조건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가면서까지 대화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5ㆍ24 조치도 천안함 도발로 취해진 조치이기 때문에 북한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양측이 원칙론으로 일관하자 유연성 부족과 대화 및 관계개선 의지 부족 지적도 쏟아진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부는 남북 양측이 원하는 사안을 통 크게 교환하는 전략적 유연성이 부족하고, 북한은 전제조건에 집착하는 등 대화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런 기싸움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이산가족이다. 앞서 통일부는 9일 정례브리핑에서 “물리적으로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은 힘들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약 한 달, 최소 3주 이상은 필요한데 당장 남북이 합의해도 설(2월 19일)까지 시간을 맞추기는 어렵다. 북한은 전제조건인 5ㆍ24 조치 해제만 고집하고, 정부는 대화의 장에 나와서 얘기하자는 식으로 평행선만 달리고 있는 것이다.
또 북한이 반발하는 한미연합훈련인‘키리졸브 연습’과 유엔 북한인권현장사무소 설치(서울)가 3월로 예정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북한이 대화 제의를 거스를 명분이 생기는 만큼 이 기간에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기 힘들다. 당장 북한은 동해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긴장 고조 행동에 나선 상태다.
한반도의 안정적 상황 관리 주문도 이어졌다. 이수훈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반기부터 한반도 정세가 파국적 패턴으로 가지 않으려면 북한과 대화는 물론 물밑 접촉까지 시도하는 등 다각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양무진 교수도 “남북이 입장 차가 워낙 큰 만큼 최고 지도자가 결단해줘야 한다”며 “특사 교환을 통해 대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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