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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따지는 사회

입력
2015.02.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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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뒤숭숭하랴. 하루도 바람 자는 날 없이 공노할 일투성이다. 어쩌다 세상이 이런 지경인지.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것들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르고 납득할 수 없는 복수와 파괴를 제멋대로 일삼는다. 뉴스와 신문대로면 세상은 욕망과 폭력의 도가니다. 아, 선량한 사람들은 죄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유치원, 학교, 가정, 길거리에서 저 아랍 땅까지 사람의 미덕이 도통 사라져 성한 데가 없다.

장자를 보는 중에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네가 사막처럼 변해버린 것은 다름 아닌 분별에 있었다는 것을. 이것을 저것과 구분하고 나와 남을 구별하다 보니 따질 것들이 많아졌다. 지고 살기가, 손해보고 살기가 죽기보다 싫으니 그야말로 죽기 살기다. 이도 질세라 저도 질세라 따지고 대들다가 엉켜 진흙탕으로 자빠진다. 당연히 울화통이 터지면서 파탄이 난다. 그저 뒤돌아서 각자의 길로 떠나면 그만인 것을, 뒤통수에 침을 뱉던, 돌멩이라도 던져야 직성이 풀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다운 격조가 없다. 옛날에도 이랬을까.

곰과 늑대가 먹이를 두고 싸우는 동영상. 늑대는 네 마리고 곰은 한 마리인데 이 곰의 기세가 만만치가 않다. 서로 으르렁대며 한참을 싸운다 싶더니 결국엔 같이 어울려서 먹이를 뜯는다. 이럴 수가. 승자 독식의 동물왕국에서 흔치않은 일이 벌어졌다. 변증법적 진전! 늑대들은 먹이를 빼앗기지 않았고 곰도 굶주림을 피했다. 같이 승리했다. 곰과 늑대는 따지던 분별을 중도에 그만 두었다. 따지던 것을 멈추는 순간 곧바로 평화가 왔다. 하물며 미물도 그러할진대! 사람은 달라도 달라야지 싶다. 사리분별을 따져 묻는 풍조가 이제는 좀 물린다. 법 없이 살자는 게 아니다. 법이 있어도 무심하게 살 수 있으면 좋지 않겠나. 약육강식의 사회도 절충하지 않나. 그까짓 분별에만 목을 매고 살 일은 아니다.

물론 연극도 분별이 있어 따진다. 분별 없이 규칙 없이 연극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그 분별은 무서운 법이 아니라 약속이다. 배우가 앉아서 머리를 싸맬 때 조명을 바꾼다든지, 어떤 대사가 끝날 때 노크소리가 난다든지,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단어가 나왔을 때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허둥댄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러나 규칙이 들키면 연극은 유치해진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하되 룰을 어기지 않고 제대로 잘 따라 갈 때 좋은 연극이 된다. 연출이 하는 최후의 디렉션은 무엇일까. ‘이제까지의 디렉션을 모두 잊으십시오.’ 결국에는 분별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그러면 자유가 온다. 마음이 풀어지고 편안해진다. 따지더라도 적당히 따지고 물러서면 그 순간부터 이미 화평이다.

분별이 지나치면 상대는 어느 순간 무분별해진다.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당연히 그러하다. 사람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따지는 순간 적개심이 동한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좋다. 싫어하게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세상이 덜 무서워지지 않을까. 우리는 다 작고 외롭다. 외로운 사람끼리 기대면 좀 바람직한가. 모두 똑같다. 그만 따지면 좋겠다. 네가 이래서 나는 이런다는 생각은 그만 해도 좋다. 욕망에 취해 사람이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만큼이나 해줬는데 너는 이 만큼도 안 해준다고, 사랑하는데 너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런 거 좀 덜 하면 좋겠다. 적당히만 하자. 그러면 금세 아무렇지 않다. 멋져 보인다. 따져서는 정말이지 답이 없다.

세상의 재화는 넘쳐난다. 인심은 각박해졌다. 사람으로 돌아가자. 뉴스도 반성해야 한다. 이제 살벌한 이야기는 좀 덜 보고 덜 듣고 싶다. 사람이 사람으로 승리하는 이야기가 그립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아니다. 꽃은 꽃이라서 사람은 사람이라서 그저 아름답다. 그 뿐이다. 덜 따지는 사회가 그립다.

희망한다. IS의 만행이 더는 없기를. 그들을 응징하더라도 마음 속 깊이는 아파하고 존중하기를. 가진 자라서 못 가진 자라고 함부로 하지 않기를. 가지지 못한 자라서 가진 자에게 열등하지 않기를. 욕망으로 타인의 삶을 짓밟지는 말아주기를. 비단 그 뿐이랴. 따지지 않아도 인간은 누구나 소중하다는 것을.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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