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 영업·탈세 의심 고객 정보, 퇴사한 직원이 佛 세무당국에 넘겨
中 리펑 前 총리 딸도 248만달러, 한국인 계좌는 20개 232억원 규모
유럽 최대 은행인 HSBC 스위스지부가 전세계 권력자와 부자 10만여 명의 비밀계좌를 관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각국이 역외탈세 조사에 착수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1988∼2007년 HSBC 제네바 프라이빗뱅킹(PB)센터의 203개국, 10만6,000명의 비밀계좌 고객 정보를 입수해 분석한 후 8일 홈페이지에 ‘스위스은행 고객정보 유출’이라는 제목으로 HSBC 스위스지부의 탈법 영업과 탈세가 의심되는 고객 정보를 공개했다. ICIJ는 이들이 예치한 금액이 총 1,000억달러(109조원)를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자료는 2007년 퇴사한 HSBC 전 직원 헤르베 팔치아니가 퇴사 직전 고객 명단을 해킹해 프랑스 세무당국에 넘기면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별 금액은 스위스(312억달러) 영국(217억달러) 베네수엘라(148억달러) 순이고 고객 수(개인 및 법인)로는 스위스(1만1,235개) 프랑스(9,187개) 영국(8,844개) 등이다. 한국인 명의 계좌는 20개로 총 2,130만달러(232억원) 규모다.
명단에는 영국 등 주요 국가의 전현직 정치인 6만여명과 중동의 갑부 국왕, 성직자 등 주요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대표 인사로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측근인 라시드 무함마드 라시드 전 통상산업 장관으로 계좌에 3,100만달러(339억원)가 예치돼 있었다. 리펑 전 중국 총리의 딸인 리샤오린 계좌에도 248만달러(27억원)가 있었다.
HSBC의 검은 계좌 폭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그리스 시사주간지 ‘핫도그’의 발행인 겸 편집장인 코스타스 박세바니스가 이른바 ‘라가르드 명단’을 폭로해 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이 세무조사를 벌였다. ‘라가르드 명단’은 이번에 폭로된 HSBC 비밀계좌 명단의 일부였다.
비밀계좌를 둔 자국민들이 드러난 국가들은 역외 탈세 혐의를 염두에 두고 즉각 세무조사에 착수하는 등 강경 대응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역외 탈세 방조 혐의로 HSBC 조사에 곧 착수하고 덴마크와 프랑스 정부는 HSBC 고객 명단에 오른 자국민의 탈세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는 캐나다 국적 계좌 1,859개 중 264개 소유주가 해외 도피자금 자진 신고 프로그램을 통해 파악돼 2,840만캐나다달러(248억원)의 세금을 회수했다. 인도는 소득세 담당 부서가 계좌 소유주들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HSBC는 비밀계좌 관리와 탈세 방조 의혹에 대해 “일부 고객들이 비밀계좌를 유지해 이익을 취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도 “지금은 계좌관리의 근본 체질이 바뀌어 있다”고 해명했다. ICIJ 보도의 영향으로 9일 HSBC 주가는 1.8% 떨어졌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