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미발표 단편 희곡 네 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는 여성의 사랑과 육체적 욕망, 행복과 불행, 정신적 결핍 등 19세기 러시아 여성의 삶을 통해 현대사회를 반추한다.
이번 작품을 구성하는 단편들 ‘약사의 아내’ ‘나의 아내들’ ‘아가피아’ ‘불행’ 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 네 작품 모두 체호프 특유의 에로티시즘을 밑바탕에 깔고 있고 등장하는 여성들 모두 남편의 감시와 위협에도 끊임없이 일탈과 자유를 꿈꾼다.
하지만 극은 각 단편의 장르를 각각 다르게 설정해 동어반복을 피해간다. ‘약사의 아내’는 코미디, ‘나의 아내들’은 그로테스크(괴기) 코미디, ‘아가피아’는 목가극, ‘불행’은 모노드라마로 표현됐다. 장르의 차이만큼 작품이 전하는 느낌도 다르다. ‘약사의 아내’는 배우들이 극 중 상황과 감정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나의 아내들’은 아내를 살해하는 기괴하고 섬뜩한 내용을 희화화해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아가피아’ 속 잔잔한 시골 정취는 ‘부정하지만 저급하지 않은’ 아가피아와 사프카의 로맨스를 상징한다. ‘불행’은 사랑하는 남자와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인의 내면을 1인극 형식으로 전달하면서 끊임 없이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를 묻는다.
각기 다른 형식의 작품들은 기차와 가방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 그릇에 담긴다. 작품이 시작되기 전 각 단편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기차역에 모여 각자의 가방을 움켜쥐고 눈치를 본다. 가방을 움켜쥐는 행동은 숨겨둔 욕망을 들키지 않으려는 주인공들의 몸부림으로 읽힌다. 이들은 또 기차소리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약사의 아내’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기차소리를 들으며 설렘을 느끼지만 ‘아가피아’ 속 주인공은 아쉬움을 느낀다. 기차소리가 들릴 때마다 지루한 일상을 떠나 일탈을 즐길 수 있는 약사 아내와 기차소리가 들리면 불륜 상대를 떠나 남편에게 돌아가야 하는 아가피아의 상반된 감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극의 부제인 ‘파우치 속의 욕망’은 극의 정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19세기 러시아와 현대사회를 잇는 도구다. 현대 여성이 항상 휴대하는 파우치는 핸드백 깊숙이 넣어두는 작은 가방이다. 겉으로 드러낼 수 없지만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여성의 욕망을 상징한다. 파우치 속 화장품, 여성용품 등을 통해 개별 취향을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극은 여성들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종류의 욕망을 포착한다. 3월 1일까지 서울 중구 세실극장.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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