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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클림트가 그린 사랑의 심리

입력
2015.02.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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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빠질 수 없는 그림이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Kiss)’다. 너무 많이 알려져 한편으로는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남녀의 뜨거운 사랑만이 힘든 세상에서 유일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 작품은 반짝이는 금박으로 칠해지고 화려하게 장식돼 있어서 두 남녀의 사랑이 천박하지 않고 강렬함과 깊이를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의 사각형 문양과 여자 옷의 부드러운 원형 문양은 남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사랑의 조화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꽃이 가득한 초원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다. 또한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몸을 숙이고 강하게 안은 채로 입맞춤을 하고 있다. 아마도 많은 여자들의 환상이 그렇게 강렬하게 자신을 껴안은 남자의 입맞춤일 것이다. 여자 또한 남자를 꼭 껴안고 황홀해 하는 표정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초원의 가장 끝자락에 불안하게 서있다. 특히 여자의 발은 낭떠러지에 걸쳐있기에 무척 위험하다. 그러나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에게 의존해 서로를 향한 사랑에만 충실할 뿐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사랑은 이렇게 황홀함과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모든 것을 다 내던져 버리고 빠져들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열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사랑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어가는 이들도 사랑에 대한 막연한 열망들은 있게 마련이다. 미치도록 빠져 들 수 있는 사랑은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은 채 이렇게 늙어 버리는 건가 하고 한 두 번쯤 푸념 아닌 푸념을 하곤 한다. 그러다가 그런 열정적인 사랑은 영화나 소설이나 그림에나 있는 것이지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포기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사랑을 새로이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을 유지하는 것 또한 그만큼 어렵다. 인간은 반복적이고 뻔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무료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욕구는 모험과 도전, 또 여러 경험들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욕구이다. 그런데 새로운 이성을 찾고자 두리번거리는 성향은 때로는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이성에게 쉽게 빠져드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겠다는 것도 일종의 인지적인 결심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사랑을 유지해 가는 것 또한 냉정한 인지능력이 요구된다. 실제로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의 사랑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지능력과 관련 있다는 심리학 연구가 있다. 실행기능이라고 불리는 인지 능력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고와 행동을 조절하는 인지적 통제 능력을 말한다. 불필요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억제하고 목표와 부합되는 정보에만 반응하는 능력이다. 실제로 이 실험에서 개개인의 실행기능 능력을 측정한 후 잠시 대기실에 기다리게 하는데 이때 매력적인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때 이 여성에게 얼마나 추파를 던지고 접근하는지 등의 유혹 정도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실행기능이 낮은 남자의 경우 매력적인 새로운 상대를 유혹하는 행동을 훨씬 더 많이 보였다. 사람들은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자동적으로 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접근하고 추파를 던지고 싶어 한다. 이런 욕구는 이미 존재하는 한 사람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신실해야 한다는 욕구와 충돌하게 된다. 이 때 실행기능이 높은 사람들은 매력적인 새로운 이성의 유혹에 넘어가려고 하는 욕구를 억제하고, 자신이 이미 헌신하기로 한 사람과의 관계에만 집중할 수 있다.

사랑은 감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의 냉정한 인지 능력을 요구한다. 다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사랑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선 인지적 통제능력이 필요하다.

또 다시 밸런타인데이가 돌아온다. 새롭게 뜨거운 사랑을 꿈꾸거나 공연히 다른 이성에게 한 눈 팔지 말고 오랫동안 내 옆에 있어준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진중하고 책임 있는 사랑, 그래서 깊이를 더하는 사랑, 이를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인지적인 결심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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