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보충대에 이재민 14가구 생활, 내무반 비좁고 불편… 방음도 안돼
함께 들어왔던 주민 100여명 떠나… 市 "이달 말까지만 운영" 퇴거 통보
불 난 아파트 3곳은 입주 불가 판정, 보증금 반환도 어려워 이재민 한숨
아침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떨어졌던 9일 경기 의정부 306보충대 내무반에선 김모(81) 할머니의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두 달 전만해도 이제 막 입영한 훈련병들이 머물던 내무반에서 김 할머니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눈 내리는 창 밖을 내다보는 이유는 한달 전 일어난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지난달 10일 불이 난 의정부동 드림타운 아파트 202호에 세 든 입주민이었다. 한가로운 주말 오전 인근 대봉그린아파트 주차장 사륜오토바이에서 시작된 불은 아파트 3동과 주택 3동, 다가구주택 1동 등으로 옮겨 붙어 130명의 사상자와 374명의 이재민을 냈다.
당시 화재로 김 할머니 역시 1년 8개월 전 큰사위가 거금 4,500만원을 들여 마련해 준 보금자리를 잃었다. 할머니는 1년 전 무릎 수술한 뒤로는 걷는 것조차 힘든 몸이지만,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자식들에게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해 지난달 이곳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김 할머니는 “다리 불편한 늙은이를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원룸을 전세로 얻어주고는 사위가 좋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몹쓸 불이 났다”며 돋보기 안경 너머로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전세금이나 빨리 빼주면 다른 곳에 집이라도 얻을 텐데 집주인은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306보충대에는 현재 김 할머니와 비슷한 처지의 이재민 14세대 17명이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경의초등학교에서 이곳으로 이재민 거처가 옮겨졌을 때는 78세대 129명이 함께 왔지만 거주 환경이 열악해 많이 떠나갔다. 대한적십자사 등 구호단체가 이들의 생활을 돕고 있지만,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내무반에 6~8세대가 한꺼번에 배정되면서 사생활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세대당 10㎡씩 배정된 공간은 옷가지 등이 뒤엉켜 두 사람이 눕기에도 비좁았고 방음이 전혀 안 돼 가족끼리 이야기라도 나누려면 눈치를 봐야 한다. TV는 복도로 나가야 시청이 가능하다. 외출하려면 가파른 언덕을 넘어 600~700m 걸어야 해 자동차가 없는 이들은 갈 엄두도 못 낸다.
해뜨는마을 1001호에 살았던 윤모(68)씨는 “징역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비좁고 불편해서 딸(24)은 아예 친구 집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은 그나마 이 내무반도 이달 말 비워줘야 해 시름이 더 깊다. 의정부시는 306보충대 임시거소를 28일까지만 운영한다며 이재민들에게 비워줄 것을 지난달 말 통보했다. 시 관계자는 “자연재해도 아닌 상태에서 군에 한시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며 “다음달부터는 이재민들이 알아서 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상당수 이재민들은 스스로 거처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이날까지 이재민들의 전ㆍ월세 보증금 43억5,300만원(248건) 가운데 반환된 금액은 27%인 11억7,400만원(104건)에 불과하다. 상당수 집주인이 여윳돈이 없다며 경찰 수사결과에 따라 책임소재가 가려진 뒤 화재보험 보상금을 받으면 돌려주겠다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불이 난 아파트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 의정부시가 지난달 16일 한국시설안전공단에 의뢰해 불이 난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아파트, 해뜨는마을아파트 등 3곳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조기 입주 불가 판정이 났기 때문이다. 의정부시는 재 입주하려면 안전조치 등이 필요해 4~5개월은 더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윤씨는 “딸 명의의 집에 불이 난 것이라 주거비 등의 지원대상도 안 된다”며 “기초연금 20만원에 기대 살고 있는데 이곳마저 비우라고 하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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