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전력 붕괴 최악 상황에 스트레스… 사령탑 10년 만에 지휘봉 반납
남은 경기 추승균 코치 대행 체제로
2005년 겨울. 프로농구의 최대 관심사는 신선우(59) 감독(현 여자농구연맹 총재 직무대행)이 창원 LG로 옮긴 전주 KCC의 2대 사령탑이었다. 전신인 대전 현대시절부터 프로농구 최고 명문가로 입지를 굳힌 KCC의 허재(50) 감독 영입은 그래서 더 화제였다.
허 감독은 중앙대와 실업농구 기아자동차를 거쳐 부산 기아-원주 나래(동부)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불세출의 스타플레이어. 라이벌 KCC는 앙숙과도 같았던 상대의 최고선수를 사령탑으로 맞이하는 파격적인 선택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역대 최고의 스타 출신 사령탑에 오른 허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2006~07시즌 꼴찌에 머물렀지만 KCC는 허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2008~09시즌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첫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정상에 오른 첫 사례였다. 2010~11시즌에도 정규리그 3위였지만 챔피언결정전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현역 시절부터 열혈남아였던 허 감독은 지휘봉을 잡고서도 선수들을 혹독하게 다그치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가 됐지만 사실 베테랑에겐 예우를 해 주는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선수 복도 많았다. 부임 때부터 당대 최고 선수인 ‘이(이상민)-조(조성원)-추(추승균) 트리오’와 함께 했으며 이후에도 서장훈(41ㆍ은퇴), 하승진(30), 전태풍(35ㆍ부산 KT) 등 특급 선수들이 그를 거쳤다. 각종 드래프트(신인, 외국인, 귀화)에서 매번 1, 2순위를 독식하다시피 하는 천운이 따랐다.
하지만 2010~11시즌 우승을 끝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2~13시즌 정규리그 최하위에 그친 KCC는 지난 시즌도 7위로 끝내 6강 플레이오프에 들지 못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하승진이 공익근무요원을 마치고 복귀했다. 특급 포인트가드 김태술(31)도 영입했다. 지난 시즌 슈퍼루키 김민구(24)까지 보유한 KCC는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지만 허 감독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김민구가 국가대표 차출기간 동안 음주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KCC의 행보는 꼬이기 시작했다. 김태술도 최악의 슬럼프에 빠졌고, 하승진은 발목, 코 부상을 잇따라 당해 베스트 전력은 사실상 붕괴됐다.
결국 허 감독은 9일 시즌을 9경기 남겨 두고 지휘봉을 반납했다. 시즌 성적은 11승34패로 9위. 이미 농구계에서는 “허 감독이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번 시즌을 끝으로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신선우 감독(1994~2005년ㆍ현대전자 포함)의 9시즌을 뛰어 넘어 KCC 역대 최장수 사령탑으로, 현역 중에는 유재학(52) 울산 모비스 감독에 이어 두 번째 장수 감독으로 남아 있던 허 감독의 10년 장기집권은 막을 내렸다. 그래도 허 감독은 10시즌 동안 팀을 두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 4강 플레이오프도 두 번, 6강도 한 번 올려놓았다.
KCC 관계자는 “허 감독이 시즌 내내 거취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면서 “사퇴 결정이 급작스럽게 정해져 일단 추승균 코치를 대행으로 남은 시즌을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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